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요즘 한국에서 오는 조기유학생과 언어연수생의 수가 부쩍 늘고 있는 분위기다. 주위에서 보면 요사이 미국에 들어오고 있는 한국의 친지나 친구들의 자녀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한인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한결같이 도와주자니 그렇고, 안 도와주자니 입장이 난처하고 이래저래 골치가 아프다고들 한다. 타 주에 떨어진 아이들은 “저 뉴욕으로 가고 싶은데요”라며 있을 곳과 학교를 알아봐 달라고 요청해 오는 가 하면, 한국의 친구나 친척들로부터는 “우리 애가 곧 갈 테니 잘 좀 봐달라”는 부탁들이 오고 있어 현지인들은 마음이 편치 않다.
보호자와 같이 오는 건 그래도 괜찮으나 아직까지 나이도 어린아이들이 혼자 보내져 이런 저런 도움을 필요로 하는데는 모두들 질색들인 눈치다. 기회가 되면 누구나 해외에 나가 좋은 환경에서 교육을 받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권장할 일이다. 그러나 미성년자들이 홀로 이국 땅에 보내져 힘들게 살아가는 동포들을 귀찮게 하거나 타인의 손에 맡겨지면서까지 유학이나 연수를 하게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언젠가는 한국에서 유학박람회가 개최됐는데 그 모임에 4만 5천명에 이르는 학부모들이 몰려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한다. 강남의 고급아파트에 가면 한 집 걸러 한 집에 아이들을 미국에 보내고 있다할 정도로 지금 한국은 조기유학이나 언어연수 붐이 뜨겁게 일고 있다.
이런 열풍이 부는 것은 무엇보다도 본국의 잘못된 교육정책이 커다란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은연중 몸에 벤 이산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없는 우리 민족의 역사적인 배경도 잠재적으로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만주사변이나 6,25 동란, 일제치하 때와 같이 우리민족은 이산의 아픔을 겪고 그 고통을 감내했던 민족이다. 그러기에 이산을 슬퍼하면서도 그 이산의 아픔을 은연중 선택하고 향유(?)하는 것은 아닌지. 내 땅을 떠나는 걸 오히려 숙명처럼 생각하는 사고가 잠재적으로 몸에 베 커다란 두려움 없이 아이들을 유랑의 길을 떠나도록 하는데 주저 않는 것 같은 느낌이다. 미국에 조기유학과 연수 붐이 이처럼 강하게 부는 나라는 아마도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열풍에는 대국을 선호하는 한국인의 잠재적인 가치관의 영향도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조기유학이나 언어연수란 사실 엄청난 돈이 드는 데다 학생자신이 잘못될지도 모를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 그런데도 부모들이 자녀를 서슴없이 머나먼 이국 땅에 보내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이 원인이 돼 한국의 복잡한 사정과 맞물려 “나 같은 사람은 이 땅에 설자리가 없다.” “차라리 떠나자” 식의 국민적 정서로 자리잡으면서 생겨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내가 못 가면 자식이라도 떠나보내 그들이 희망하고 꿈꾸는 땅에 가서 이상을 실현하도록 해야겠다” “서울대학을 못 갈 바엔 생명력이 있는 곳으로 유학을 보낸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서울에 올라와 공부하고 장원급제하려던 옛 과거열풍과 같은 현대판 입신양명의 열풍과도 같다. 물론 미국에서 학교를 제대로 졸업하면 그 중에는 좋은 인재가 많이 나와 사회나 국가에 기여하는 일이 될 수 있는 잇점도 많이 있다. 그러나 언어가 다르고 문화도 달라 어려움도 많은 타국 땅에 무조건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한국에서 못하니까 미국에나 가라”는 식으로 보호자도 없이 보낸다면 이는 분명 잘못이다. 대책 없이 보냈다가 문제가 생기는 건 전적으로 부모의 책임이다. 자칫 돈 날리고 자식 버리는 꼴 되기 십상이 바로 조기 유학이요, 언어연수이기 때문이다.
친척이나 친구에 맡기거나 한국에서 보호자까지 달려보내 유학시킨 아이들 가운데는 잘못돼 한국으로 도로 데려가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이런 현실에서 타국 땅에 어린 자녀를 혼자 떼 보내고 지내는 부모들의 마음은 과연 편안한지 의문이다. 이런 바람에 시달리는 우리 이민사회는 또 어떻게 반응을 해야할지 명쾌한 해답을 내리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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