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의 한 여직원이 한동안 안보이다가 회사에 나왔는 데 얼굴이 까칠했다. 평소 눈인사 정도를 나누는 사이이지만 너무 야위어서 이유를 묻지 않을수 없었다.
“얼마 전에 둘째 아기를 낳았어요. 두돌 못된 큰 애랑 둘을 돌보려니 너무 지쳐서요. 회사에 나오니까 살 것 같아요”
남자들이 군대이야기를 시작하면 으레 이어지는 것이 ‘뺑뺑이’즉 기합 이야기다. 나라는 존재는 없는 것으로 치고 상대방의 필요에 따라 어떤 행위를 반복적으로 하는 것을 ‘뺑뺑이’라고 본다면 여성들에게도 ‘뺑뺑이’ 기간이 있다. 하루종일 아기에게 매달려 우유 먹이고, 기저귀 갈고, 목욕시키고, 옷 입히고…를 수없이 되풀이하는 어린 아기 키우는 기간이다. 아기가 우윳병 떼고, 기저귀 떼고, 혼자 밥먹고, 혼자 세수하고, 혼자 옷 입게 되고 하기까지 엄마들이 하는 수고는 군대의 ‘뺑뺑이’ 이상이다. 아이에 대한 사랑으로 버티기는 하지만 24시간 잠시도 눈을 뗄수 없는 상황은 엄청난 스트레스다.
“매일 아침 오늘은 소리 지르지 말아야지 하고 결심을 해요. 하지만 저녁때쯤 되면 목소리가 차츰 높아지다가 ‘이 아이들을 내다 버리든지 내가 도망가든지 해야지 못 견디겠다’는 말이 목까지 차올라요”라고 올망졸망 세아이를 키우는 한 엄마는 말했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자그마치 다섯이고, 유전적으로 우울증까지 타고난 여성이 겪었을 정신적 압박감은 어느 정도일까. 압력밥솥이 압력을 견디다 못해 무서운 폭발력으로 터져버린 것과 같은 일이 지난 20일 휴스턴에서 일어났다. 생후 6개월부터 7살까지의 고만고만한 5남매를 하나하나 욕조 물에 익사시켜 침대에 나란히 눕히고 시트를 덮은후 남편과 911에 전화했던 앤드리아 예이츠 사건이다.
처음 이 뉴스를 들었을 때 나는 사이코 영화의 소재나 될까, 보통 여성들과는 상관이 없는 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 여성의 산후우울증을 시작으로 자세히 소개된 그 가정의 이야기를 읽어보니 그건 남의 일이 아니었다. 완벽한 목표를 설정해놓고 그에 도달하려고 안간힘을 쓰며 상처받는 우리들의 모습이 거기에 담겨있었다.
예이츠 부부의 관계는 남편은 코치, 아내는 선수였던 것같다. 남편은 가정에 대해 가장 완벽한 그림을 그려놓고 아내가 이에 도달하기를 기대했다. NASA의 컴퓨터 엔지니어인 남편 예이츠에게 완벽한 가정은 ‘신이 허락하는 대로 많은 자식을 낳아 최선의 교육과 함께 독실한 신앙인으로 키우는 것’이었다. 그런 남편의 뜻에 따라 앤드리아는 93년 결혼과 함께 간호사일을 그만두고 아이 낳아 기르는 일만 했다. 다섯 아이를 돌보면서 학교보다 나은 교육을 위해 홈스쿨링을 했고, 그 한편으로 알츠하이머 환자인 아버지를 매일 찾아가 간호했다.
그 모두가 좋은 일들이지만 문제는 앤드리아가 견디기에 너무 벅찼다는 것이다. 4번째 아이를 낳고는 자살을 기도해 정신착란증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도 남편은 자신의 ‘완벽한 그림’에 수정을 가하려 하지 않았다. 앤드리아는 또 아이를 낳았고, 올봄 친정아버지 사망을 계기로 우울증과 정신착란증이 갑자기 악화했다.
자식을 모두 잃은 불행한 아버지 예이츠는 “내가 어떻게 했으면 이런 사태를 바꿀수 있었을까”하며 괴로워했다. 그가 책임질 부분은 결승점에 도달해 받을 트로피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선수의 상태를 보지못한 점이라고 본다. 선천적 장애로 단거리도 힘든 선수에게 10종경기 우승 트로피를 내보이며 “할수 있다. 못한다면 말이 되는가”라며 너무 밀어붙인 격이 되었다.
육아 스트레스 때문에 아이를 죽이는 일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일어나지 않는다. 정신 착란증의 결과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아기를 출산하고 키우며 여성들이 겪는 심신의 어려움에 대한 이해는 깊어져야 한다고 본다. 아기를 낳은 엄마는 자랑스럽고 행복해서 희생이 오히려 즐거움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의 ‘어머니 신화’이다. 그 말이 맞는 것이기는 하지만 엄마들의 상태를 모두 표현한 것은 아니다. ‘신화’에 눌려서 ‘너무 힘들다’는 말을 감히 꺼내지 못하는 많은 엄마들을 기억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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