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문학의 종점이 천지 밖 멀리 아득한 곳에 있다면 나는 지금 한 삼백리쯤 왔을까?
아무리 서양문화를 가까이 하고 그들 땅에 생활을 내려놓고 산다고 해도 나는 동양정신을 푹신한 방석으로 깔고 한국문학의 따스한 내용을 감사하게 느끼고 앉아있다.
이렇게 된 연유에는 사부 김관식이 나에게 혼으로 붙어다니기 때문이다.
문학 뿐만 아니라 민족정신사에서 동양정신을 품고 일생을 소요한 사람은 문학에 있어서의 나의 사부되시는 김관식 선생님이시다. 1934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하시고 1970년 8월 30일 겨우 37세로 돌아가시었으니 요절인 셈이다.
알려진 바대로 기인 행각으로 동분서주 하였으며 그의 행동과 학식과 정신의 씀씀이가 사통팔달 하였으니 그를 보고 모두 천재라 일컬었으며 특히 육당 최남선 거봉은 그를 유별나게 아끼시고 사랑하였다. 육당의 배려와 주선으로 경기상업고등학교 교사로 직장을 얻기는 했으나 취직 첫날부터 학교측을 당황하게 하였다.
평소에 신경도 쓰지 않던 세수를 자하문 밖 산골을 깨우며 흐르는 실개천에 머리를 통째로 담구어 씻고 학교를 갔으나 교장은 그의 행색을 보고 학교의 쓰레기나 치우러 온 잡역부로 보았던 것이다.
김관식의 주민등록증에는 1924년으로 되어 있다. 57년 주민등록법이 신설되고 온 국민이 주민등록 신고를 의무적으로 해야 할 때 그는 나이를 일부러 10년을 더 높여 신고했다. 그리고는 하늘의 별 같았던 당대의 문단 노장들과 맞장으로 어울리며 노장들을 “아무개 군! 아무개 군!” 하며 불러댔다.
타협과 눈치와 조화를 모르는 자존의 성격이 현실생활의 실패와 용납되기 어려운 사회정서로 인해 폭음과 폭음으로 세끼 삼기를 수삼년, 결국은 꼿꼿하던 그의 몸은 무릎을 꿇고 타계하고 만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들어서던 해, 가깝게 지내던 문인들을 광화문 월계수에 다들 모아놓고 혁명론을 펼치었다.
총칼의 혁명이나 폭력의 혁명, 더더욱 불셰비키식의 혁명이 아닌 모럴의 혁명, 의식의 혁명, 미의 혁명, 인간회복의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고 하면서 즉석에서 문화혁명정부를 세우고 그 자리에서 각료랍시고 여러 사람을 각료에 임명하였다.
다른 테이블에서 대포를 기울던 화가나 음악가들 까지도 닥치는대로 요직에 임명하였다.
이 때의 가장 요직이었던 문화부장관으로 임명된 사람이 여류소설가 고 김말봉 여사의 서자 이현우씨였고, 술 심부름을 잘 하던 나는 역시 비서가 되었다. 그리고는 막소주 두어사발을 단숨에 더 들이키고는 “윤태야 가자!” 바람처럼 다음 동네로 가는 것이었다. 다음 동네라야 모두 싸구려 술집, 술집마다 그래서 그가 터줏대감이었다.
기인은 기인을 천재는 천재를 침묵 속에서 알아본다. 김관식과 이현우의 우정은 여기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던 것이다.
이현우는 김광섭 노 시인의 추천으로 ‘끊어진 한강교’를 발표하면서 등단하였고 그 때의 당선소감이 편지 형식의 소감으로서 수신인은 김관식으로 되어 있었다.
《관식아, 몇자 적는다. 내가 뭐 몇자 적어본댔자 자네도 알다시피 별 뾰족한 수가 있겠느냐만 웬지 지금의 나의 심정은 자네에게 꼭 무어라 한 마디 해야만 속이 후련할 것 같다. … 중략 … 자네의 그 굴할 줄 모르는 꿋꿋한 정신력이 부럽다. 시니 뭐니 하다가 나는 나에게 있어서 가장 귀중한 그 무엇을 모두 놓쳐버린 것만 같다 … 중략 … 차라리 일체를 불살라버리고 이름없는 항구의 주점, 그 어느 으슥한 자리에 앉아 날마다 울려오는 서러운 뱃고동 소리라도 들어가며 한평생 아무렇게나 지내버렸으면 하는 그런 심정이다... 하략…》
눈물겹도록 진솔하게 쓰여졌던 그 때의 이현우의 육성이었다.
지금 이현우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의 가족들도 옛 친구들도, 인생의 비애를 나누던 문인들도 그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니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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