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크레딧 카드 요금을 보내려고 체크를 쓰면서 “아니 웬 외식비가 이렇게 많이?” 하며 깜짝 놀라고 말았다.
외식을 할 때는 맛있게, 즐겁게 먹고서 나중에 6, 7백 달러를 지불하려면 ‘먹고 마시는데 이렇게 많은 돈을 낭비하다니, 이 돈이면 다른 보람된 곳에 얼마든지 쓸텐데’ 하는 것이 사람 마음인가 보다.
그래서 이번 달은 ‘외식 안 하는 달’이라고 달력에 커다랗게 써놓았는데 1일부터 더워서 입맛이 없다는 핑계로 외식 후 집에 와보니 달력에 그렇게 씌어 있다.
지난 달부터 한국에서 손님들이 얼마나 밀어닥치는지 마치 홍수처럼, 밀물처럼 몰려온다.
여름방학이 되며 대학생들은 단기 영어 연수차, 초 중 고등학교 학생도 영어 연수 겸 뉴욕 관광으로, 고등학교와 대학생 자녀를 둔 동창생들은 유학 온 아이를 보러 혹은 이번 기회에 유학을 시키려고 등등 집집마다 한국에서 온 조카, 친구들이 없는 집이 없다.
한국에선 정말로 IMF가 끝났는지 경기회복 바람을 타고 해외여행객도 급증하고 있다. 20년, 25년만에 연락 온 친구들의 전화를 불시에 받는 것이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나야, 잘 있었니?”
“뉴욕이구나. 만나야지.”
이미 뉴욕에 와서 전화를 하는 친구를 처음에는 집으로 초대했으나 매일 직장 나가는 처지에 장 봐서 상 차리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라 요즘은 외식으로 때우고 만다.
한국에서 온 이들은 저녁을 먹으며 대부분 이렇게 말한다.
“A는 방배동 65평 아파트에 살고 B는 서초동 60평에 살고 C는 37평에 살다가 이번에 늘려서 60평으로 이사갔고, 우리 나이쯤 되면 다들 자리 잡아서 60평 이상에 살아.”
처음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스퀘어 피트나 평수 개념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왜 살고있는 아파트의 평수를 말하나해서다.
아파트의 평수에 따라 재산세, 주거비, 가구/가사용품비, 광열/수도비, 가전제품비 등이 올라가기에 외부로 보여지는 넓은 평수의 집이 부의 기준이 되기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왜 나의 재산은 이 정도라는 것을 말해야 하지? 그것이 자랑거리 이전에 왜 이야깃거리가 되어야 하는지, 아무리 빌딩과 아파트와 단독주택을 여러 채 갖고 있어도 살림만 하던 가정주부라서 일하는 여성에 대한 열등감으로 그런가?
그러나 나는 또 그들 앞에 늘어진 시간들, 내게 하루 한 시간만 떼어주어도 너무 잘 쓸 것같은 넘치는 자유가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는데.
한국에서는 다들 그렇게 말하니까 이들도 습관처럼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만나니 공통된 대화가 별로 없지만 주위 친구나 아이들의 근황을 물어보는 저녁 식사후 계산은 당연히 내가 한다.
“여기는 내 동네니까.”하고 은행에 단돈 백 불 있는 나는, 한국에 빌딩과 넓은 평수 아파트를 지닌 친구의 밥값을 낸다.
며칠 전에도 한국에서 온 친구 부부를 만나러 식당에 간다니까 후배가 하는 말이 “그 집이 요즘 엥겔 지수가 높네요.” 했다.
독일 통계학자 엥겔이 1975년 근로자의 가계 조사에서 발견한 법칙인, 전체 생계비에 비해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식료품비가 요즘 우리 집에 적용될 줄이야.
한국의 미국으로 향한 교육 대란이 이어지는 한 뉴욕에 사는 우리 집 엥겔 지수는 날로 높아가고 있다.
그러나 솔직히 잊어버리고 있던 친구가 나를 찾아오면 반갑다.
단발머리 여고생 얼굴이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어떻게 변했나 싶어 궁금하기도 하고, 산다는 것이 뭐 별건가. 이렇게 사는거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