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0억불로 꽂은 베네수 원유 공급 차질 불가피…중남미 영향력 축소
▶ “中, 美 비난하면서도 미묘한 균형 맞출 것”… “지정학적 판도 지켜볼 것”

베네수엘라 상공에 포착된 미군 헬리콥터 [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베네수엘라를 전격적으로 공격하고 현직 국가 수장을 무력으로 압송한 가운데 중국이 걱정에 휩싸였다.
그동안 베네수엘라에 대한 600억달러 채권국으로서 싼값에 안정적으로 원유를 공급받았던 특혜를 잃게 될 위기에 처한 데다 미국의 패권 확대에 따라 중남미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에 난관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5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미국의 '돈로주의(Don-Roe Doctrine)' 부활로 중국의 중남미 영향력이 이미 시험대에 오른 데 이어 이번 베네수엘라 공격이 중국과 중남미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돈로주의는 19세기 미 고립주의를 주창했던 먼로주의에 더해 미국이 중남미에 대한 우선권을 가져야 한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더한 합성어다.
현지시간으로 3일 새벽 미국이 전광석화처럼 베네수엘라를 공격하고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급습해 뉴욕으로 압송한 상황에서, 전날 중국 외교부는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며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즉시 석방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분석가들은 중국이 트럼프 행정부에 맞서면서 마두로 정권 지지에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하는 분위기다.
이들은 오히려 중국이 "새롭게 형성된 지정학적 판도를 지켜보며 신중하게 외교적 전략을 재조정하고, 장기적 관점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고 SCMP가 전했다.
베네수엘라의 향후 정세 추이에 따라 중국의 경제·외교 입지 등이 크게 변할 수 있는 데다 무력 사용을 불사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서반구 장악 전략에 따라 중국의 중남미 영향력 축소가 불가피해지는 상황에 주도면밀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중국 내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국가안보 전략을 발표하면서 돈로주의를 강조한 데 주목한다.
미국이 200년 전에 서반구에 간섭하지 말라고 외국에 경고한 것과 마찬가지로 트럼프 대통령이 "아메리카 대륙을 워싱턴의 영향력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분명히 밝힌 것은 미국의 앞마당 격인 중남미를 넘보려는 중국에 대한 경고 메시지라는 점에서 이에 적절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대한 공격을 단행하기 전인 지난달 11일 중국은 베네수엘라를 거명하지 않으면서도 '정치적 조건' 없는 중남미·카리브해 지역 원조를 약속하는 '중남미 카리브해 전략 문서'를 발표함으로써 트럼프 행정부를 자극했으나 이제는 주춤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에 대해 SCMP는 "오랜 기간 중국의 중남미 진출을 미국의 이익과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해온 트럼프 행정부가 중남미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억제하기 위한 추가 조치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상하이 푸단대 미국학 센터의 자오밍하오 부소장은 "미중 간에, 서반구에서 경쟁이 더 복잡하고 치열해질 가능성이 크다"며 "미국이 (중남미의) 3국에서 대중국 압력을 강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외교가에선 이참에 중국이 베네수엘라를 포함한 중남미 정책을 재검토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으로선 베네수엘라 원유 수입 문제가 발등의 불이다.
중국은 자국의 국가개발은행(CBD)을 통해 베네수엘라에 600억달러를 빌려주고 이를 원유로 갚게 하는 식으로 베네수엘라산 초중질유를 저렴한 가격으로 도입해왔다.
작년 11월 기준으로 베네수엘라는 하루 약 92만1천배럴의 원유를 수출했는데, 중국은 이 중 80%인 74만6천배럴이 중국행이었다. 경질유에 비해 정유가 쉽지 않은 초중질유에 특화한 설비를 갖춘 중국은 국제가격보다도 훨씬 싼 값에 베네수엘라 원유를 확보하는 특혜를 누려왔다.
그러나 미 행정부가 필요하다면 추가 공격을 통해서라도 베네수엘라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감추지 않는 가운데 베네수엘라의 대중국 원유 공급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미 1970년대 베네수엘라의 석유 국유화와 2007년 우고 차베스 정권의 미국 석유 기업 자산 몰수를 불법으로 규정해온 미국이 향후 베네수엘라 석유산업을 대거 재편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미국이 기존 베네수엘라산 원유 공급망에 변경을 가하게 되면 중국행 원유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중국으로선 베네수엘라산 초경질유 전용 정유소 가동률 저하는 물론 더 비싼 대체 원유 조달 등에 나서야 한다. 관련 비용과 리스크가 커질 수밖에 없다.
중국의 대중남미 일대일로 정책 변경도 불가피할 듯하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공격을 계기로 중남미의 정치·외교·안보·군사·경제 지형이 크게 바뀔 수 있어서다. 패권을 목적으로 한 미국의 군사력 투사로 중남미 각 국이 위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중국이 수십년간 중남미에서 펼쳐온 인프라·무역·기술 투자 등을 통한 영향력 확장이 어렵게 된 것은 불문가지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중국은 브라질이 브릭스(BRICS) 회원국인 점을 이용해 국제무대에서 미국 견제를 위한 연대를 강화해왔고, 페루에선 국유기업 중국원양해운(코스코·COSCO)이 건설한 창카이항을 근거지로 세력 확장에 주력해왔다.
홍콩 재벌 리카싱 일가 기업인 CK허치슨이 파나마 항구 5곳 중 2곳(발보아·크리스토발)을 운영하는 것을 교두보로 파나마 운하 운영 장악을 시도해오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동안 미국에선 자칫 중남미가 중국 영향권에 들어가 '탈(脫)달러'는 물론 '반미 지역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 게 사실이다.
미국의 반격도 이어져 왔다.
특히 미국은 '남미의 트럼프'로 불리는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 이끄는 아르헨티나에 통화스와프까지 제공하면서 중국의 중남미 영향력 확장을 저지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왔다.
미국은 아울러 볼리비아를 설득해 작년 11월 기존 중국 및 러시아와의 리튬 공급계약 재검토를 끌어내기도 했다.
또 좌파 성향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을 겨냥해 50%라는 초고율 상호관세 부과를 위협했던 트럼프 미 대통령이 기존의 서슬 퍼런 기세를 꺾고 작년 가을 유엔 총회를 계기로 유화적 접근을 하고 있어 주목된다.
싱크탱크 독일마셜펀드(GMF)의 보니 글레이저는 SCMP에 "중국이 (미국의 베네수엘라 공격에 대해) 비난하면서도 미묘한 균형을 맞출 것"이라면서 "하지만 중국이 그 이상의 액션을 취할지는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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