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이 중남미 카리브해에 화력을 증강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상대로 한 퇴진 압박을 강화하면서다. 쿠바나 콜롬비아 등 베네수엘라 주변 좌파 국가 정권들의 일망타진까지 미국이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12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간 카리브해에서 마약 밀매 의심 선박들을 공습하고 최근 베네수엘라산 원유 적재 유조선을 나포한 미국 국방부(전쟁부)가 △지상 공격을 가능케 하고 △베네수엘라 방어 체계를 무력화하며 △석유 수출을 막을 수 있는 군사 자산을 카리브해로 이동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군은 이미 해당 해역에 1만5,000명이 넘는 병력과 최신예 항공모함 제럴드 포드호 등 12척의 함정을 배치한 상태다.

WSJ에 따르면 스텔스 전투기 F-35A, 전자전용 전투기 EA-18G 그라울러, 구조용 헬기 HH-60W, 전투구조 항공기 HC-130J 등이 푸에르토리코에 배치되고 있다. 상공에서 폭격기와 전투기에 연료를 공급할 수 있는 공중급유기도 최근 도미니카공화국으로 이동했다. 미첼항공우주연구소(MIAS) 연구 책임자 헤더 페니는 이들 배치 전력과 관련해 WSJ에 “부수적 피해를 최소화하며 정밀하고 은밀하게 공격을 수행하는 데 최적화됐다”고 말했다.

마약 카르텔을 소탕하겠다고 선언한 트럼프 대통령은 누차 해상에 이어 베네수엘라 지상 공습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천명했다. 이날도 백악관 행사에서 지금껏 행정부가 해상으로 미국에 들어오는 마약의 96%를 차단했다며 “이제 우리는 지상에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마침 같은 날 마두로 정부가 미국이 베네수엘라 이민자 송환 항공기 운영을 전날 중단했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이날 한때 무력 충돌 임박설이 퍼지기도 했으나, 미국이 곧바로 이를 부인했다.

당장 미군의 베네수엘라 전면 공습이 단행될 공산은 크지 않다는 게 대체적 관측이다. 대신 사이버 작전과 전자전을 통한 위성 교란 등으로 일단 방공망을 무력화한 뒤 전투기 등을 동원해 핵심 지상 목표물에 정밀 공습을 가하는 게 공격 시나리오 중에는 가장 개연성이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베네수엘라 석유부 차관을 지낸 에바난 로메로는 석유 금수 조치로 마두로 정권의 자금줄을 차단하는 게 군사 공격보다 먼저 이뤄질 것으로 점쳤다.

미국은 베네수엘라를 흔들면 쿠바와 콜롬비아 등 주변 국가들의 반미(反美) 좌파 정권까지 흔드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듯하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최근 미국의 베네수엘라산 원유 유조선 나포는 마두로 정권뿐 아니라 수십 년간 베네수엘라 석유를 싸게 공급받아 온 쿠바에 타격을 주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동요 조짐은 벌써 나타나고 있다. 코카인 원료 생산지 등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 국경 부근을 근거지로 삼고 마약 밀매와 불법 광물 채취 등으로 수익을 올리고 있는 콜롬비아 최대 반군 ‘민족해방군(ELN)’은 12일 엑스(X)를 통해 공개한 성명에서 “(미국의) 제국주의적 개입과 국민을 배신하는 (콜롬비아 정부의) 과두 정치 행태에 맞서 14일 오전 6시부터 72시간 동안 무장 활동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외세를 구실로 콜롬비아 정부군 공세에 대한 반격 명분을 찾으려 한다는 게 현지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