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자인·품질’ 고급 제품 버금가
▶ ‘중산층·고소득층’도 가성비 중시
▶ ‘패션·뷰티’ 업계는 유사제품 ‘둡’
▶ 식료품업계는 자체 브랜드 PB

브랜드 충성도 대신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 경향이 나타나면서, 유통업계에서 유사 제품과 자체 브랜드 제품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로이터]
“레깅스 하나에 10만원 넘게 쓸 필요 없더라고요. 품질도 별 차이 없고요.” 뉴욕에 사는 애드리아나 리날디(34) 씨는 고급 레깅스 여러 벌을 갖고 있지만 대부분 유명 브랜드 제품이 아니다. 한때 한 벌에 118달러를 주고 ‘룰루레몬’ 레깅스를 샀던 그녀는 이제 3분의 1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CRZ 요가’ 제품을 애용한다. 이른바 ‘둡(Dupe·Duplicate의 줄임말)’ 열풍이 거세다. 과거에는 저렴한 짝퉁이라면 품질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최근엔 정품 못지않은 품질의 유사 제품이 등장하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유사 제품과 함께 대형 마트나 온라인 쇼핑몰의 ‘자체 브랜드’(PB) 상품들이 인기를 끈 지 이미 오래다.
■ ‘중산층·고소득층’도 가성비 중시최근 소비자들 사이에서 브랜드 충성도보다 가성비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틱톡 등 SNS에서 유명 인플루언서들이 브랜드 제품 대신 둡 제품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올리며 높은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밥슨대학 로런 바에텔스파어 마케팅학 교수는 “경제 불확실성이 클 때 둡 제품을 찾는 건 ‘똑똑한 소비자라’는 자부심을 갖게 한다”라고 둡 제품 인기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높은 물가와 개인 부채, 게다가 관세 우려까지 겹치면서 허리띠를 졸라매는 소비자가 느는 가운데 브랜드와 유통업체들도 ‘가성비 전쟁’에 뛰어들고 있다. 대형 슈퍼마켓 체인업체 앨버트슨스의 수잔 모리스 CEO는 최근 1분기 실적 발표 자리에서 “PB 제품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다”라며 “앞으로 관세 인상으로 식료품 가격이 더 오를 경우 PB 제품이 훌륭한 대안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같은 변화는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중산층, 심지어 고소득층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경제분석 기관 무디스의 소매업 부문 체들리 루이스 부대표는 “중산층 사이에서 월마트, 달러 제너럴, 달러 트리 등 저가 유통업체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라며 “PB 제품의 인기는 소비자들이 그만큼 신중해졌다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신중한 소비 경향은 식료품뿐 아니라 의류·소형 가전 등 ‘선택적 지출’ 항목에서도 나타난다. 과거 소비자들이 브랜드 이미지에 끌려 특정 브랜드를 고집했다면 이제는 괜찮은 품질에 더 저렴한 가격을 중시하는 소비 행태를 보이는 것이다.
■ 작년 PB식품 매출 2,706억 달러소비자들의 브랜드 충성도가 약해지며 유통업계가 PB 상품 매출에 박차를 가하는 가운데, 식료품 업계에서 이 같은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시장조사기관 ‘서카나’(Circana)의 샐리 라이언스 와이엇 선임 고문은 “PB 제품은 대형 마트와 할인점들이 수십 년 전부터 수익성 높은 상품군으로 공을 들여온 분야”라며 “2022년부터 물가 상승이 본격화하면서 유통업체들이 PB 제품 전략에 다시 집중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서카나와 ‘PB제조업체협회’(PLMA)가 공동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식료품 및 생활용품 PB상품의 연간 매출은 약 2,706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 대비 4% 증가한 수치로, 같은 기간 내셔널 브랜드의 성장률은 1%에 그쳤다. 지난해 전체 식료품 및 생필품 매출 중 약 20%가 PB상품이 차지한 것으로도 조사됐다.
시장조사기관 입소스가 작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지난주 구입한 식료품 대부분 또는 전부가 PB 제품’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전체의 33%에 달했다. 반면 ‘대부분 브랜드 제품’이라는 답변 비율은 24%에 그쳤고, ‘절반씩’이라는 응답은 41%였다. 전통적인 브랜드업체들은 PB 경쟁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시리얼 ‘치리오스’와 ‘시나몬 토스트 크런치’로 유명한 제너럴 밀스와 지난달 파산 보호 신청(챕터11)을 한 통조림 식품업체 델몬트 등의 업체도 PB 제품과의 경쟁에서 패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 ‘디자인·품질’ 고급 제품 못지 않아과거에는 단순히 저렴한 대체품에 머물렀던 PB 상품들이 이제는 디자인, 품질, 구성까지 개선되며 브랜드 제품 못지않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대표적으로 타겟은 유기농 라인 ‘굿 앤 개더’(Good & Gather)와 디저트 중심 프리미엄 라인 ‘페이버릿 데이’(Favorite Day) 마케팅에 공격적이다. 월마트는 중상위층을 겨냥한 유기농 건강식품 PB ‘베터굿스’(Bettergoods)를 선보이며 호응을 얻고 있다. 반면 아마존은 저가형 필수 식료품 라인 ‘아마존 세이버’(Amazon Saver)를 출시해 반대 가격 전략을 택했다.
PB 시장의 원조격인 코스트코의 기세는 여전히 강하다. 코스트코 PB ‘커클랜드 시그니처’(Kirkland Signature)의 작년 매출은 560억 달러로 코스트코 전체 매출의 23%를 차지했다.
이는 베스트바이, 코카콜라, 달러 제너럴의 전체 매출을 뛰어넘는 규모다. 최근 독일계 할인 유통업체 ‘알디’(Aldi)와 ‘리들’(Lidl)도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전미소매연맹’(NRF)에 따르면 알디는 지난해 미국 내에서만 120개 신규 매장을 열었고, 매출은 전년 대비 14% 증가한 540억 달러를 기록했다.
■ ‘패션·뷰티’ 업계는 ‘둡’ 열풍패션 및 뷰티 시장에서는 둡 제품 열풍이 거세다. 화장품 브랜드 E.L.F., 향수 브랜드 ‘도시에’(Dossier), 패션 브랜드 ‘퀸스’(Quince)와 ‘퓨모다’(Few Moda) 등은 고가 브랜드의 대체품이라는 점을 전면에 내세워 빠르게 소비자층을 끌어 모으고 있다.
도시에는 고가 디자이너 향수를 모방한 ‘인상적 향수’(Impression Perfumes)’ 시리즈로 틱톡에서 입소문을 타며 뉴욕에 첫 매장을 열었다. 메종 프란시스 커정의 335달러짜리 ‘바카라 루즈 540’의 둡 제품인 도시에의 ‘앰버 샤프란’(Amber Saffron)은 시중에서 49달러면 구입할 수 있다. 시장조사기관 닐슨IQ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향수 둡 제품 매출은 전년 대비 103% 급증했다. 같은 기간 화장품 둡 매출은 약 10%, 스킨케어 둡 매출은 약 27% 상승했다.
시장조사기관 어도비 애널리틱스가 2024년 6월부터 2025년 6월까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전반적인 소비 트렌드 역시 ‘저가 중심’으로 이동 중이다. 의류 분야에서는 가장 저렴한 가격대 제품 비중이 9% 늘어난 반면, 고가 제품 비중은 5.7% 줄었다.
둡 브랜드 중 하나인 ‘퀸스’(Quince)는 의류·가방·주방용품 등 다양한 제품을 고급 공장에서 직접 생산해 중간 유통 과정을 줄이고 있다. 퀸스 측은 “5,000 달러짜리 보테가 백 대신 이탈리아산 고급 가죽으로 만든 130달러짜리 둡 제품을 구입하라”고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멤버십 기반 패션 브랜드 ‘퓨모다’(Few Moda) 역시 “유명 브랜드와 같은 제조 공장에서 만든 제품을 ‘원가’ 수준으로 제공한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퓨모다 웹사이트에선 ‘티어리’(Theory), ‘스토드’(Staud), ‘테드 베이커’(Ted Baker) 등의 고가 브랜드와 공유하는 제조사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아마존에서도 CRZ 요가와 같은 셀러들이 유행을 빠르게 반영한 패션 둡 제품을 내놓으며 인기 몰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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