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 한잔의 초대/홍영옥 한국무용가·영화배우

사진=조진우 기자
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 김백봉선생과 화관무
이민온후 독도소극장 서게되며 연기세계에 입문
강한 어머니 그린‘김치 타코’NYU단편영화제 여우주연상
한국무용가로 오랫동안 활동해 온 홍영옥, 그가 최근 뉴욕 한인이민자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한편으로 NYU 단편영화제에서 단박에 여우주연상을 따냈다. 꿈꿔온 이민의 삶을 하나씩 이뤄나가는 그의 이야기다.
▲달달 외운 영어 대사
20여년 한국 무용가로서 무대에 서는 한편 열심히 후학을 지도하고 있는 홍영옥, 그가 영화배우로 데뷔하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지난 4월27일 뉴욕대학교 ‘퍼스트 런 필름 페스티발’의 티쉬 아시아 크래프트 어워드(Tisch Asia Craft Awards)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이다. 홍영옥은 흑백스릴러영화 ‘김치 타코’ (감독 김세란)에서 여주인공 미세스 한으로 나왔다.
홍영옥은 수년 전 단편영화 ‘링더 벨’의 어머니 역으로 영화의 맛을 아주 살짝 본 적이 있다. 그런데 2014년 11월 뉴욕한국문화원을 통해 독도 소극장으로 ‘주연 여배우를 찾는다’는 연락이 왔다.
감독을 만나 오디션을 봤지만 “바빠서 못한다”고 거절했으나 김세란 감독은 ‘홍선생 얼굴에서 여린 것같지만 어머니의 강한 면이 보인다’고 3일동안 계속 전화하며 출연을 적극 권했다. ‘김치 타코’는 남편이 강도 총에 의해 사망하자 범인을 찾으러 다니는 한인여성 미세스 한이 남편에게 버림받고 아이를 혼자 키우는 멕시코 여성을 만나 함께 위로하고 위로받는 이야기다.
“한번 부딪쳐보자.”는 결심이 오늘의 그가 있게 했다. 주위에선 “무용만 하던 사람이 어떻게 영어로 대사를 하느냐고 걱정을 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17분40초짜리 대본을 무조건 외워야 했다. 처음엔 번역을 하여 한국어로 뜻을 이해하고 두 번째는 한줄씩 반복하며 매일 달달 외웠다. 대사를 다 외우자 그다음엔 감정을 실었다.”
11월말 스패니시 할렘지역에서 밤 11시부터 1주일동안 촬영을 하는데 아무리 추워도 좋아서 하는 일이라 힘든 줄도 몰랐다고 한다. 촬영이 끝나고는 잊어버렸는데 3년 후 감독에게 연락이 왔는데 “ 홍선생에게 여우주연상이 보인다”는 것이다. 출품작 50편 중 ‘김치 타코’는 ‘티쉬 아시아 와서맨 어워드’ 3등상도 수상했다.
요즘 ‘김치 타코’는 할렘영화제, 호보콘영화제, 기타 국제영화제에서 초청 상영 중인데 6월말 LA 초청상영회에서는 할리웃 영화관계자들과 만남의 기회도 갖는다. “강한 어머니에게 헌정하는 영화로 배역이 좋았고 운이 좋았다. 아직 실감이 안난다” 는 홍영옥은 “영화제에 초청받아 가면 출연배우는 레드 카펫을 밟아야 한다” 며 기쁜 듯, 다소 쑥스러운 듯 말한다.
▲장구장단에 저절로...
홍영옥은 1951년 실향민의 2남2녀 중 장녀로 부산 수정동에서 태어났다. 춤은 5살 때 시작했다.
“어머니가 큰딸인 내게 한국춤을 배우게 했고 여성국극단이 오면 나를 데리고 보러 갔다. 공연이 뭔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좋았다. 10살 때 서울로 이사 오면서 친구도 없이 외톨이였다. 정릉 약수터에 갔는데 장구소리가 들렸다. 장구소리를 따라 가보니 할머니들이 모여 있었고 나도 모르게 장단에 맞춰 저절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때부터 무용학원에서 춤을 배웠고 고등학생때 김진걸 학원 원장이 김백봉 선생을 소개했다.”
홍영옥은 71년 경희대 체육대학 무용과로 들어가서 김백봉 선생의 부채춤을 전수받았다. 75년 대학을 졸업한 후 인천 숭덕여중 무용교사를 지냈으며 88올림픽과 장애인올림픽에서 김백봉 선생과 제자들이 참여한 대형군무 ‘화관무’에 출연하기도 했다.
당시 부모님을 비롯 친정식구들은 오래 전 미국 이민을 가고 결혼 후 혼자 서울에 남았는데 ‘왜 나만 여기 있지? 나도 갈까? 미국에 가서 한국 춤 가르치면 되지. ’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뉴욕행 비행기를 탔다.
▲춤추며 가르치며
그때가 92년 12월이었다. 뉴욕에 온 홍영옥은 생업을 위해 네일살롱에 나갔다, 첫날 덩치가 산만한 흑인 여자의 발을 닦으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가 춤추러 왔는데 왜 이걸 하고 있지? 앞으로 어떻게 살지?” 흐느껴 울었지만 별 도리가 없었고 네일 일을 5년간 했다. 97년경 한국민속놀이단체 최선생을 만났고 이후 주어진 춤을 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매년 5월 아시안문화유산의 달 행사, 한국국악협회미동부지부(회장 음갑선)무용분과 회원으로 명인열전, 미주한인의 날 시청앞 축하공연, 성탄절 공연, 인터내셔널 데이 행사, FIT 대학국제무용 퍼레이드, 설날행사,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행사, 한국초청공연 등을 해오고 있다.
2015년 5월 국악협회 교사들과 멕시코 유카탄 반도 한인선교여행을 갔다가 전세계 무용축제에도 참여했다. 2016년 트리트니다드, 토바고 초청공연, 2017년 3월 니카라과 선교 및 니카라과 국립자치대학 한국전통 무용공연도 했다.
2007년 독도소극장의 박동훈 감독을 만난 것이 연기세계에 발을 딛게 만들었다. 박감독은 뮤지컬에서 이순신장군 어머니역을 권했다. 그는 TV드라마 사극을 볼 때마다 ‘나도 저런 것 하면 잘한 텐데’ 하던 차였다.
이렇게 플러싱 열린문화센터에서 어머니역을 하며 춤을 춘 것이 시작이었고 계속 뮤지컬 ‘흥부 놀부 뉴욕에 오다’에서 흥부 아내역, 악극 ‘홍도야 울지마라’에서 노래, 춤을 선보이는 등 7~8편의 연극 및 뮤지컬 무대에 섰다. 홍영옥에게 “감정을 잘 끄집어내어 잘한다”는 평이 쏟아졌다.
“웨체스터 용커스에 산다. 매일아침 버스, 기차, 전철을 갈아타면서 수업하러 다닌다. 버스 안에서 안무를 구상한다.”는 홍영옥은 플러싱 KCS봉사센터는 10년째, 브루클린 소재 한국성당에서는 5년째 한국무용을 가르치는 한편 150가 홍영옥 스튜디오에서 소그룹 및 개인레슨을 한다. 현재 한미문화센터 디렉터. 한국국악협회 미동부지부 무용분과위원장, 퀸즈한인회 공연위원장, Delight 선교어린이 국악팀 무용분과 단장이다.
▲꿈을 꾸니 이뤄져...
“12월13일 한국국립 해오름극장에서 산조춤의 대가인 고 김진걸 스승 추모공연에서 산조춤을 춘다.”는 홍영옥은 “원래 내성적이고 말을 잘 하지 않는 편인데 내가 이렇게 영화배우가 될 줄 몰랐다.
꿈과 희망, 그런 것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으면 언젠가는 그것이 이루어지더라. 88년 올림픽 개막공연에서 김백봉 선생과 함께 손님맞이 화관무를 추면서 참으로 가슴이 뿌듯했다. 내 나라에서 처음 열리는 올림픽에 참여한다는 자부심이었다. 미국에 와서 메츠구장에서 한국무용가 7명이 한국춤을 추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내가 하면 더 크게 할 수 있을텐데 하고 38세에 88올림픽에서 맛본 그 감정을 꿈꾼 적이 있다”고 말한다.
이 꿈은 3년 뒤 이뤄졌다. 2014년 50명의 성인으로 구성된 한국춤 공연이었다. 무용단 반은 한국이 오방색 칼라 천을 들고 원을 그리고 서있고 그 안에서 무용단 반은 소고춤, 북춤을 추며 하늘을 차고 오르는 한국의 힘을 과시한 것이다. 앞으로 홍영옥은 장편영화 출연, KCS 건축 기금모금 공연, 개인발표회 꿈을 다시 꾸고 있다.
“꿈을 꾸니 이뤄지더라, 수년 전 한국일보 ‘차 한잔의 대화’에 한국무용가 인터뷰를 보고 나도 언젠가는 이 페이지에 나오고 싶다는 꿈을 가졌었다. 이렇게 꿈이 이뤄지지 않았나” 하며 수줍게 웃는다.
미용실 안가고 혼자서 손질 할 수 있어 경제적이고 간편한 올백 머리를 고수하는 그는, 딸 둘이 결혼하여 5명의 손주를 둔 할머니다. 비즈니스에서 은퇴한 남편 피터 사는 성악에 소질 있어 한인사회에 노래 봉사를 많이 했는데 요즘은 아내의 공연시 운전기사가 된다.
“딸들이 자기들을 다 키워놓고 엄마 인생을 열심히 사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언제까지 무대에 설 지 모르지만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것이 이것뿐인데, 계속 일하니 건강에도 좋다. 요즘이 나의 인생 중 황금기다. 밤마다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하고 있다. 지금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결심하는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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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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