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사기술 주도권 산업계로 이관 R&D 예산 감소ㆍ관료주의 탓에 신무기 프로젝트 구애 헛물 일쑤
▶ 구글 등 “접촉ㆍ협력 말라”박대, 美 국방부 실추 위상 회복 안간힘

국방분야에서 실리콘밸리의 기술력과 영향력이 펜타곤을 앞서면서 군이 민간의 눈치를 살피는 현상이 빈번해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군 출신자들의 실리콘밸리 입성이 가속화되는 점도 흥미롭다. 사진은 사우스 캐롤라이나 포트 잭슨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육군 신병들의 모습이다.
“방명록에는 이름을 남기지 않아주셨으면 합니다.”최근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손님 숨기기’ 싸움이 한창이다. 끊임없이 선물 상자를 들고 찾는 손님과 달갑지만은 않은 이들의 흔적을 지우려는 집주인 간의 기싸움이다. 주인공은 미국 국방부 국가보안기술 담당자 애덤 제이 해리슨과 실리콘밸리 기업들. 군사기술 개발 협력을 위해 실리콘밸리를 찾는 국방부 관리들이 자신과 접촉을 외부에 드러내길 꺼려하는 기업들로부터 잇따라 문전박대를 당하고 있는 현주소다.
전세계 국방비 1위에 전쟁 수행 능력 1위를 자랑하는 미 국방부가 어쩌다 불청객 신세로 전락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최첨단 군사장비 및 기술 개발의 주도권이 미국 국방부에서 실리콘밸리를 필두로 한 산업계로 넘어가면서 생긴 현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를 인식한 국방부는 산업계에 다양한 프로젝트를 제안, 구애 중이지만 줄어든 연구ㆍ개발(R&D) 예산, 구식 관료주의로 인해 외면 받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보도했다.
실리콘밸리의 ‘국방부 보이콧’ 신호는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이 최근 일본 도요타와 매각 협상 중인 로봇 기업 미국 보스턴다이내믹스와 일본계 샤프트(SCHAFT) 사례가 대표적이다.
구글은 2013년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 주최 로봇기술 대회에서 우승한 두 기업을 인수하면서 제1조건으로 국방부와 접촉 금지를 내걸었다. 실제 샤프트는 지난해 DARPA 주최 경연에 참여하지 않았다. 해리슨 국방부 관리자는 “구글은 국방부와 협력하길 원치 않는다”며 “우린 더 이상 미래에 투자하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국방부의 R&D 투자 예산이 기업에 쏟아지는 투자 자금에 비해 볼품없이 줄어드는 상황은 주도권 역전의 주 요인으로 꼽힌다.
FT에 따르면 미국 정부의 군사 연구개발비는 1980년대 중반만 해도 전세계 연구 자금 중 절반을 차지했으나 최근 그 비중은 10%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은 지난 4월 미국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미 국방부의 R&D 예산은 720억달러 정도로 애플, 인텔, 구글의 연구비를 합친 것 2배 이상”이라고 공언했으나, 실제 투자 금액은 4분의 1에도 못 미치는 125억달러인 것으로 밝혀졌다.
국방부가 외면 받는 또다른 이유는 구태를 답습하는 정부의 관료주의 때문이다. 실리콘밸리 소재 칩 제조업체 룩스 캐피털의 조쉬 울프 창립자는 “국방부와 작업은 요식으로 가득한 골칫거리”라며 “실리콘밸리의 젊은 혁신가들은 빠르게 움직이는 체제에 익숙해 정부의 관료주의에 질색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스티브 블랭크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대부분의 혁신적인 스타트업은 부가적인 (정부의) 서류작업을 감당하면서까지 그들의 지적 자원을 노출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국방부는 대외 이미지 실추를 막기 위해 위기 상황을 애써 부인하면서도 자구책을 찾고 있다. 카터 국방장관은 지난 3월 에릭 슈미트 알파벳 회장 겸 전 구글 최고경영자를 대표로 한 방위혁신자문위원회(DIVA)를 발족, 일선 기술자들과 협력해 국방부 보안 시스템의 취약점을 찾기 위한 ‘펜타곤을 해킹하라’(Hack the Pentagon)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그는 6월 국방기술 관련 회담에서도 “국가 보안을 위해 국방부와 실리콘밸리 기업가들 간 다리를 다시 짓는 작업에 헌신하겠다”며 구애를 이어갔다.
한편 실리콘밸리를 찾는 미국 특수부대 전역자가 최근 몇 년 동안 부쩍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등에서 목숨을 내건 온갖 비밀 특수작전 경험을 가진 전직 특수부대원들이 페이스북, 구글, 에어비앤비 등 실리콘밸리 업체에 취업하는 것은 물론이고 창업하는 것은 이제는 더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해군 특전단(네이비실), 그린베레(육군 특전단), 포스리컨(해병대 특수수색대), 레인저 등 특수부대 출신들은 대부분 민간 보안 회사나 경찰, 연방수사국(FBI) 등에서 제2의 인생 설계를 하지만, 최근에는 실리콘 밸리행을 선택한 전역자들이 급증했다고 AP 통신이 최근 보도했다.
실리콘밸리 행을 택한 특수부대 전역자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아직 없다.
포스리컨 출신으로 ‘웨어러블’(wearable) 기술 창업사인 아토스의 최고운영책임자(COO)인 돈 폴은 지난 1∼2년 사이에 최소 100명가량의 특수부대 전역자들이 실리콘밸리 행을 택한 것으로 추산했다. 그는 지휘 통솔에 문제가 있는 체 특히 아이디어는 풍부하지만, 조직력은 약한 스타트업으로는 이를 메꾸는 데 특수부대원들이 제격이라고 지적했다.
국방부와의 연결고리도 이들이 지닌 또 다른 장점이다. 이런 기대감을 반영하듯 네이비실을 포함해 특수부대원들의 취업 지원 등을 전문으로 하는 ‘명예재단’(The Honor Foundation) 등의 기관들이 최근 여러 곳 설립되기도 했다.
실리콘밸리의 컨설팅 전문업체 맥크리스털 그룹의 관리 담당 이사를 지낸 네이비실 출신 크리스 퓨설은 “특수전 요원들은 전통적인 거대 조직에서 민첩성을 갖춘 소수팀으로 근무한다”며 “이런 환경에서 성장한 특수전 출신들은 재빠르고 날쌔게 행동한다”고 지적했다.
<
김정원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