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학으로 본 크레딧 스코어-애정관계
①표준편차 높을수록 장기적 관계유지 힘들어
②등가교환 유사한 점수 사람끼리 잘 어울려
③잔여상관 재정문제외 사사건건 충돌 가능성
미국 중앙은행이 크레딧 스코어(신용점수)를 이용해 이제 막 시작된 남녀관계의 안정성과지속성을 예측하는 다소 엉뚱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특이한 보고서의 공동저자인 제인 도코, 젱리와 제시카 헤이스 등 3인의 경제학자는 3대 신용평가기관 중 하나인 에퀴팩스가 제공한 소비자들의 ‘리스크 스코어’에 바탕해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분기별 자료를 샅샅이 분석, 커플의 신용점수와 애정생활 사이의 상관관계를 밝혀냈다. 위험점수를 뜻하는 리스크 스코어는 크레딧 스코어와 유사한 개념으로특정 개인이 멀지 않은 장래에 채무상환 등의 신용의무를 이행하지 못할 가능성을 예측한 수치다.
이들은 보고서에서 “가정과 사회에서 크레딧 점수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는 점을 감안, 가정의 형성과 해체에 신용 점수가 실질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규명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3명의 경제학자들은 관계가 시작될 당시 남녀의 크레딧 점수를 비교해 분석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에퀴팩스가 자료를 제공할 때 개인식별 정보를 모두 제거했기 때문에 연구원 3인방은 분석대상인 커플이 결혼을 했는지 아니면 그저 동거상태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궁리 끝에 이들은 지속적 관계 형성의 출발점을 주소지가 서로 다른 두 개인이 같은 주소를 공유하기 시작하는 시점으로 잡았다.
연구를 통해 이들이 밝혀낸 주요 내용을 항목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각자의 신용점수가 높은 커플의 관계는 일반적으로 안정적이며 오래 지속되는 경향을 보인다.
▲일반적으로 각기 유사한 점수를 지닌 사람들끼리 관계를 형성하는 추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종합 신용점수와 세부내역은 재정문제나 가계지출 등으로 인해 해당 커플이 깨질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는 척도의 역할을 한다.
▲크레딧 스코어는 전반적인 신뢰성의 가늠자 역할을 한다. 신용점수에 큰 차이가 나는 커플은 재정이나 신용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이유로 관계가 깨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금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대담한 결론이지만 보고서를 작성한 3인의 경제학자는 “숫자 속에 확실한 증거가 담겨 있다”고 주장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다른 변수를 통제할 경우 표준편차가 두 개인의 신용점수 평균에서 1이 증가할 경우 이들이 그 다음해 ‘확실한 관계’로 접어들 가능성은 14%가 높아진다.
표준편차 평균값이네 뭐네 하는 전문용어들로 인해 일반인들은 무슨 말인지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겠지만 핵심은 간단하다. 즉 경제적 의무를 이행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삶속에 장기간 머무를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다는 얘기다. 장기적인 관계유지가 힘들어진다는 주장인 셈이다.
조사 결과는 두 사람의 신용점수가 관계를 시작할 때에 비해 개선되면 양자의 결합이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2년차 커플의 초반 신용점수에서 표준편차 1이 증가하면 이들이 3년, 혹은 4년이 되는 해에 찢어질 확률은 37%가 낮아진다.
표준편차란 위험의 척도 중 대표적인 것으로서 확률분포의 분산에 평방근(제곱)을 취한 값을 말한다. 따라서 분산과 마찬가지로 표준편차가 클수록 불확실성이 증가하여 위험이 커지게 됨을 의미한다.
크레딧 점수는 재정적으로 뒤섞여 있어서 두 개인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할지에 실질적인 영향을 준다.
우리는 주변사람들을 보며 “저렇게 조건의 차이가 심한 두 사람이 어떻게 커플이 되었을까” 궁금해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보고서는 “두 사람이 각기 가진 조건의 심각한 불균형은 수면아래서 들끓고 있는 긴장과 갈등의 원천”이라고 진단했다.
설사 현재 서로가 서로에게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관계에 있다 하더라도 둘 중 한 사람의 외모와 신체적 매력, 혹은 소득이 다른 한쪽에 비해 월등하다면 조만간 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갈 파열음이 터질 확률이 대단히 높다는 분석이다.
크레딧 점수 격차 역시 둘의 관계를 삽시간에 산산조각으로 해체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화약통’이다.
반면 유사한 신용기록(크레딧 히스토리: credit history)을 공유한 커플은 주택구입을 위해 모기지를 공동으로 신청하는 경향을 보인다.
모기지 공동소유는 두 사람이 ‘경제적인 수갑’으로 한데 연결되어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이들이 갈라서게 되면 ‘거래비용’이 올라가고 거래비용이 올라가면 섣불리 행동하기가 힘들어진다. 본전 생각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관계를 유지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얘기다.
초기 점수차(initial score differentials)도 관계의 안정성을 엿볼 수 있는 강력한 예측지수다.
오즈비(odds ratio)를 산출해보면 초기 점수 차이에 표준편차(66포인트)가 1 증가하면 신참 커플이 2년차, 3년차, 4년차 되는 해에 ‘쫑’ 날 가능성이 24% 높아지고 5년차, 6년차 되는 해에 찢어질 가능성은 12%가 올라간다.
오즈비는 승산비라고도 하며 어떤 집단과 비교해 다른 집단의 확률이 얼마나 높은지 나타내는 수치로 비교위험도와 비슷한 개념이다. 주로 특정사건의 발생여부를 예상하는데 사용된다.
신용점수 산정에 사용되는 중요 요소인 신용기록, 신용한도 사용액, 신용거래 기간 등이 비슷한가 아닌가는 커플이 결합 3년차, 혹은 4년차 되는 해에 헤어질 가능성과 중요한 관계가 있다.
신용점수 격차는 좋은 조건의 융자에 대한 커플의 접근 가능성이 좁아지는 것을 시사한다.
신용점수 격차로 좋은 조건의 론을 받을 수 없게 되면 필연적으로 책임소재를 둘러싼 ‘네 탓’ 공방이 시작된다. 이것이 긴장을 불러오는 레시피다.
파트너들 사이에 신용점수 격차가 벌어지면 부정적인 크레딧 이벤트가 발생할 가능성도 커진다. 예컨대 초기 신용점수 차이에서 표준편차(one standard diviation) 1이 증가하면 살림을 합친지 2년 내에 파산신청을 할 가능성이 19% 증가한다.
이뿐만 아니다. 포클로저와 불명예스런 신용기록을 남길 확률 역시 각각 10%와 15% 늘어난다.
보고서는 신용점수가 비슷한 커플의 결합강도에 관해서도 등가교환이라는 개념을 이용해 많은 것을 이야기 한다.
일반인들에게 생경한 용어인 등가교환은 표현형이 같은 상대나 상대적인 몸 크기, 순위 등이 유사한 상대간에 배우관계가 쉽게 성립되는 것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그러한 상대를 좋아하는 현상을 폭넓게 일컫는 용어기도 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커플 관계에서는 “정반대되는 사람들이 서로 끌린다”는 통설이 제대로 먹히지 않는다.
동물의 왕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같은 종에 속한 비슷한 몸 사이즈의 암수컷이 쉽게 교합한다.
‘이성적 동물’인 인간의 경우 신봉하는 종교, 교육수준과 크레딧 스코어 등과 같은 비물리적인 면에 있어서도 등가교환이 적용된다.
이렇게 보면 비운의 커플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은 더욱 증폭된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명문가 출신이다. 둘 모두 높은 신뢰성을 지녔다는 얘기다.
이들의 호환성, 혹은 양립성은 누가 보아도 확실하다. 한마디로 제대로 어울리는 커플이다.
등가교환 현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들은 당연히 결합에 성공했어야 한다. 하지만 높은 성공확률에도 불구하고 ‘원수의 가문’이라는 변수에 걸려 좌초된 사랑이기에 비극적 여운이 증폭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세계에는 ‘기본값’이 없었던 모양이다.
신용점수 격차와 의식적 분리 사이에는 잔여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어리둥절하겠지만, 신용점수차는 커플의 재정적 진행방향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같은 개념에 바탕해 3인의 경제학자들은 신용점수가 부부나 동거인 사이의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는데 필수적 요소인 기본신뢰에 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는 결론에 도출했다.
이들은 복잡한 수학공식을 이용해 남성, 혹은 여성의 신용점수와 기본신뢰사이에 상관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신용점수는 재정적 신용도만을 보여주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기본적 신뢰성을 드러낸다는 결론이다.
신용점수 관리는 개인의 기본적 신뢰성을 관리하는 중요한 작업인 셈이다.
사랑의 방정식을 제대로 풀어나가려면 신용점수를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신용관리가 인생관리다.
<김영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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