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 주요 공항서 보고되는 것만 매년 평균 26건 넘어
▶ 탑승시간 늦어… 취중에… 정신이상… 이유도 제각각
미시간주 로물러스 소재 디트로이트 메트로폴리탄 공항 외곽 철조망에 경고판이 붙어 있다. 철조망 뒤쪽으로 델타 747기가 착륙하고 있다. 이 공항에서는 지난 2년 동안 4명이 철조망을 넘었다.
■ 철책경계 ‘빨간불’
항공여행은 피곤하다. 밀폐된 실내의 좁은좌석에 몸을 구겨 넣은 채 몇 시간을 지내다보면 삭신이 저려온다.
사실 승객들은 탑승 전에 이미 지쳐 있는 상태다. 출발시간에 맞춰 부랴부랴 공항으로 달려가 무거운 짐 가방을 밀고 당기며 줄지어 탑승수속을 밟아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단계가 항공여행의 가장 성가신 부분이다. 상존하는 테러위협 때문에 승객들은 기내로 반입하는 캐리-온 수화물은 물론 착용 중인 신발과 벨트까지 풀어 검색대 위에 올려놓은 뒤 자신도 전신투시 X-레이 검사를 받아야 한다.
짐 검색을 담당하는 교통보안청(TSA) 요원들의 딱딱하고 퉁명스런 태도 역시 비위장을 건드린다. 이렇듯 한바탕 난리를 치른 후 검색을 통과한 소지품과 신발을 챙겨 황급히 탑승구로 향하는 여행객들의 표정은 그리 신나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승객들은 안전한 항공여행을 위해이 모든 번거로움을 참아낸다. 검색대에 뚫린 구멍이 대형 참사로 연결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문’만 잘 지킨다고 공항 침입자들을 모조리 막아낼 수는 없다. 알고 보면 공항의 ‘허당’은 철조망으로 둘러쳐진 사방 경계다.
최근 AP가 미국 민간항공 교통량의 4분의 3을 담당하는 전국 주요 공항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2004년 이후 공항의 외곽경계가 무너진 케이스가 무려 268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평균 26건 이상의 ‘담치기’가 발생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실제 담치기 건수는 이보다 훨씬 높다는 게 서베이 담당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조사대상에 오른 31개 주요 공항 가운데 2개 공항은 수년치 자료가 누락된 부실한 정보를 내놓았고, 보스턴의 로간공항은 보안상의 이유를 들어 일체의 정보 공개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9.11 테러참사 발생 이후 전국의 공항들은 다투어 철책 경계를 강화했다. 총 6억5,000만달러를 투입해 철조망을 이중 삼중으로 둘러치고 감시카메라를 비롯, 철조망을 넘으려는 외부인을 적발하기 위한 첨단 전자장비를 배치했다.
여기에 보태 공항 보안팀의 공항 주변 순찰을 대폭 강화하고 신분증을 부착하지 않은 직원에 대해서는 발견 즉시 현장 검문을 실시하는 등 보안조치를 크게 개선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대담하기 그지없는 침입자들을 완전히 막아낼 수 없었다.
LA 공항 경찰국장인 패트릭 개논은 “백악관도 철책 울타리를 뛰어넘는 침입자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지 않느냐”며 완전 봉쇄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공항의 보안 책임자들이 밝힌 담치기 사례들은 다양하다. 자전거를 먼저 펜스 위로 집어던진 후 사카고 오헤어 공항의 담을 넘은 한 남성은 활주로를 가로질러 자신이 예약한 항공사 터미널의 문을 두드렸다. 그는 아무래도 탑승시간에 맞출 수 없을 것 같아 친구의 도움을 받아 ‘거사’를 벌였다고 털어놓았다.
케네스 마직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남성은 2012년 3월 SUV로 필라델피아 공항 검문소의 시큐리티 게이트를 들이받으며 공항 안으로 진입, 활주로를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마침 그 때 문제의 활주로에는 승객 43명을 태운 여객기가 착륙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 사건으로 활주로에 아수라장이 연출되자 착륙허가를 받지 못한 여객기 75대가 공항 상공을 맴돌았고 80개 항공기가 지상에 발이 묶였다. 체포된 케네스는 연방 검찰에 의해 기소돼 16개월의 실형을 살았으며 9만2,000달러의 벌금을 물었다.
LA 국제공항(LAX)에서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남성이 2012년 4월부터 2013년 3월 사이에총 8차례 공항 외곽 울타리를 넘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은 채 두번이나 여객기 탑승 계단 바로 앞까지 왔다가 마지막 순간에 보안요원에 덜미를 잡혔다. 크리스토퍼 맥그래스로 신원이 확인된 이 남성은 현재 미주리주의 정신병원에 강제수용돼 치료를 받고 있다.
애틀랜타의 하츠필드-잭슨 공항은 2007년, 2012년과 2013년에 침입자를 맞았다. 이들 가운데 가중폭행 용의자였던 한 남성은 이제 막 착륙한 여객기로부터 불과 50피트 떨어진 지점에서 뒤쫓아 온 경찰에 체포됐다. 체포 당시그는 장전된 총을 소지하고 있었다.
공항 측은 담치기 사건에 대해 보통 입을 다문다. 하지만 미네타 샌호제 국제공항은 지난 4월 담치기에 성공한 15세 소년이 여객기의 바퀴 집에 들어가 하와이까지 장장 6시간의 ‘죽음의 비행’을 견뎌낸 후 마우이 공항에서 붙잡히는 대형사건이 터지면서 보안을 소홀히 했다는 여론의 십자포화에 노출됐다.
야야 아브디로 신원이 밝혀진 소년은 아프리카로 돌아간 어머니를 찾고 싶어 무작정 공항 철조망을 넘어 바퀴집 안으로 숨어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이 사건으로 인한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만약 아브디가 테리스트였다면 수백명이 목숨을 잃는 끔찍한 참사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주요 공항의 보안 책임자들은 담을 넘어 활주로까지 들이닥친 침입자들 가운데 테러 의도를 지닌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행여 비행기를 놓칠까 자전거나 차량을 동원해 공항 안으로 ‘난입’한 못 말리는 ‘돈키호테’거나 길을 잃고 헤매다 우연히 공항 안으로 들어온 사람, 혹은 술에 취해 객기가 발동한 주정뱅이, 분별력과 판단력을 상실한 정신병자들이었다.
그러나 단지 사상자가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공항 보안당국이 비난을 피해갈 수는 없다.
가세티 LA시장은 2004년부터 2014년 사이에 LAX 울타리가 24번이나 뚫렸다는 AP통신의 지적에 대해 “공항 침입을 노리는 테러분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한 번의 기회”라며 공항 울타리의 부실한 보안상태가 “지극히 우려스럽다”고 개탄했다.
AP통신이 2004년 1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전국에서 가장 교통량이 많은 30대 공항에 야야 아브디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샌호제 공항을 덧붙여 외부인의 공항 경내 무단침입 사례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침입자들이 이·착륙활주로 혹은 급유와 승객 탑승을 위해 여객기가 서있는 탑승구 지역까지 접근한 케이스가 최소한 44건에 달했고 기체 안으로 숨어든 경우는 아부디를 비롯, 총 7건이었다.
또 공항 담치기 사건이 가장 많이 발생한 곳은 샌프란시스코 공항으로 무려 37건이 보고됐으며 필라델피아, LA, 라스베가스, 샌호제, 마이애미와 탐파 공항이 그 뒤를 이었다.
공항 당국은 보안상의 허점을 노출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침입자의 신병을 확보할 때까지 걸린 시간을 밝히려들지 않았지만 입수가능한 정보에 따르면 범인 체포에 걸리는 시간은 보통 10분 안쪽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공개된 몇 안 되는 케이스들을 분석한 결과 침입자를 체포하는데 수 시간이 걸렸거나 아예 놓친 경우마저 있었다.
당국자들은 공항 담치기를 완전히 봉쇄할 묘수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침입자 신원파악에 도움을 주는 소프트웨어를 장착한 첨단 감시카메라를 배치별 기능을 갖춘 장비를 장착한 첨단 감시카메라를 마련한다 해도 비싼 인건비 탓에 이를 모니터할 충분한 인력을 확보할 수 없으니 실효를 기대하기 어렵다.
공항 울타리 보안책임은 전적으로 공항관리업체의 몫이다. TSA는 가끔 현장검사를 실시, 미비사항이나 규정위반 사항에 대해 벌금을 부과하면 그만이다.
결국 울타리 보안의 수위는 비용과 잠재적 위협의 경중을 가리는 공항 관리업체의 저울질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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