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대 말부터 수천 개 교회서 프로그램 폐쇄
▶ 명맥 유지하는 곳도 출석률 반의 반토막으로 뚝... 시대변화 무시한 교육내용·성추문 등 쇠락에 일조
주일학교에 등록하는 학생들의 수가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텅 빈 한 교회의 주일학교 교실에 한 명의 학생과 한 명의 교사가 마주 앉아 있다.
■ 종파 불문 세계적 현상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 자리 잡은 세인트폴 성공회교회. 그 곳의 주일학교 교사로 자원한 엘리슨 사스에게 드디어 첫 임무가 주어졌다. 12명의 어린이들에게 ‘예수 사랑’을 가르치라는 것이 교장직을 겸임한 담임목사의 주문이었다. 사스는 해맑은 미소로 기꺼이 ‘순종’했지만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질 때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이들과의 씨름은 주님의 특별한 ‘은총’이 필요한 고난도의 사역이었다. 주일학교 학생들은 막연히 상상했던 ‘아기 천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쑥대밭처럼 헝클어진 머리를 한 여섯 살배기는 아무리 달래고 얼려도 엄마의 무릎에서 내려 오려 하지 않았다. 몇몇 동갑내기 머슴애들은 그런 그를 집요하게 놀려댔고, 낯가림이 심한 아이의 엄마는 불안한 듯 끝내 교실을 뜨지 못했다.
교실의 주도권은 일찌감치 아이들의 손으로 넘어갔다. 꼬마들은 신참 교사가 길들일 수 없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열 살이 채 안된 두 계집아이는 그들의 관심을 끌어보려는 사스의 필사적인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카펫 위에 길게 엎드려 수업시간이 끝날 때까지 꾸벅꾸벅 졸았다.
성가에 맞춰 율동을 하자는 그녀의 제안도 완전히 묵살됐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일에 몰두했고, 사스 혼자 어색하게 춤을 추어야 했다.
그래도 사스는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예수탄생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교실 한쪽에 설치해 둔 미니어처 세트 주변에 어렵사리 아이들을 불러 모은 그녀는 “모형을 보며 아기 예수에 대해 서로 이야기해 보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앞머리를 보라색으로 물들인 한 계집아이가 나무로 만든 세례복 차림의 아기 예수 인형을 무작스레 뽑아냈다.
계집아이의 돌발행동에 갑자기 흥미가 동한 아이들이 빌라도 앞에서 예수의 처형을 요구하던 군중처럼 한 목소리로 외쳐댔다. 그들이 요구한 것은 그러나 인형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게 아니라 옷을 벗기라는 것이었다.
계집애는 급우들의 뜻을 따랐다. 겉옷을 뜯어내고 속옷 안을 살짝 들여다본 코흘리개 소녀가 확신에 찬 표정으로 선언했다. "얘는 트랜스젠더야.”
반쯤 넋이 나간 사스는 더 이상 아무 말도하지 못했다. 주일학교 아이들을 제대로 다루려면 ‘기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녀는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한때 미국 교회가 자랑하던 주일학교 프로그램이 교파에 관계없이 전반적으로 사양길을 걷고 있다. 주일학교의 부활과 간구하는 기도가 끊이지 않았지만 상황은 좀처럼 개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바나 그룹의 자료에 따르면 1997년부터 2004년 사이에 수천 개의 교회에서 주일학교 프로그램이 사라졌다.
그마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학교의 경우에도 출석률이 크게 떨어졌다. 2004년부터2010년 사이 미 복음주의 루터교회의 주일학교 출석률은 40%가 감소했고 남침례교단의 선데이스쿨 출석률은 8%로 떨어졌다.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지난 2010년 영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 가운데 주일학교에 다니는 학생의 비율은 고작 5%로 나타났다. 뉴질랜드에서는 1950년의 50%에서 1985년 11%로 급락했고 캐나다 역시 개신교단을 기준으로 볼 때 1931년에 65%였던 등록률이 2001년 27%로 곤두박질쳤다.
많은 사람들은 주일학교의 ‘주가 폭락’을 전반적인 신앙심의 쇠락에 따른 결과로 진단했지만 근본원인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들은 주일학교 등록률이 하락한 첫 번째 원인으로 아이들의 주말 일정이 지나치게 빡빡하다는 사실을 들었다.
청소년들은 주말마다 전문적인 수준의 스포츠 훈련을 받거나 8시간에 달하는 SAT 준비반에서 공부를 한다. 음악 레슨도 대부분 주말에 잡혀 있다. 대학 진학이라는 장기 목표를 위해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빼곡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아이들에게 주일학교는 우선순위가 낮은 선택과목과 같다.
교회에 나가 한 시간 동안 예배를 보고 1시간 혹은 1시간15분 정도를 주일학교에서 보내고 나면 금쪽같은 일요일 오전 시간이 ‘허망하게’ 지나가 버린다는 게 아이들의 푸념이다.
사실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는 부실한 교육 프로그램 내용도 주일학교가 학생들의 외면을 사게 된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다.
주일학교가 첫 선을 보인 것은 ‘산업혁명의 시대’였던 1700년대 말 영국에서였고 그 목표는 아동 노동자들의 훈육에 놓여졌다.
세계사의 한 획을 긋는 산업혁명의 뒤안길에는 어린이와 여성 노동자들이 쏟아낸 땀과 눈물이 있었다. 새로운 동력인 증기와 함께 산업화의 거대한 톱니를 돌린 또 다른 힘이 바로 이들로부터 쥐어짜낸 노동력이었다.
산업전사로 떠오른 어린 공원들은 그러나 사회 질서와 안녕을 위협하는 잠재적인 ‘어둠의 세력’이기도 했다. 이들이 중노동에서 풀려나는 일요일이면 마을 전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거친 노동에 마음까지 까칠해진 아이들은 매주 일요일마다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며 온갖 험한 짓을 일삼았다.
이들의 ‘집단 순화’가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에서 선교사였던 로버트 레이키스가 ‘선데이스쿨’이라는 기막힌 해법을 들고 나왔다. 그는 주말마다 거리를 배회하는 어린이들을 구슬려 얼굴을 씻기고, 머리를 빗긴 후 교회로 보내 성경과 교리문답을 배우게 했다.
달리 여가시간을 보낼 방법을 알지 못했던 아이들은 성경공부 외에 퍼레이드와 피크닉 등 다양한 친교 기회를 제공하는 주일학교에 급속히 빠져들었다. 부모들도 자녀들의 순화과정을 지켜보며 기꺼워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존 주일학교 제도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세계는 빠른 속도로 변화를 거듭한 반면 주일학교는 시대의 흐름을 무시한 채 구태의연한 원형을 거의 그대로 유지했고, 결국 ‘상업화시대’의 시장논리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21세기의 주일학교는 ‘천국과 지옥의 증거’를 요구하는 학생을 퇴출시킬 정도로 경직되어 있고, 동정녀 마리아의 수태를 생명 복제와 연관 짓는 열 살짜리 소년의 당돌한 질문에 답변을 주지 못할 만큼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인종차별 정책과 베트남 전쟁 등을 거치며 사회정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기득권 세력과 기성 권위에 대한 도전이 거세졌지만 교회는 수용 태세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교회, 특히 가톨릭 교계를 뒤흔들었던 섹스스캔들 역시 주일학교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혔다. 비록 과거사이긴 하지만 사제들의 성적일탈행위에 경악한 학부모들은 집단적으로 주일학교에 등을 돌렸다.
버지니아의 독실한 가톨릭교도인 리앤 맥네일은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 후보 면접광경을 지켜본 후 자녀의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교사 후보에 대한 신상조사는 전과기록이 있느냐는 단 한 개의 질문으로 끝났다. 물론 후속 확인절차도 없었다.
바로 그 다음 일요일부터 맥네일의 자녀 4명은 주일학교에 출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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