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세에 화장품 보따리장수... 뉴욕서 전설의 세일즈우먼... 회사 창립하며 승승장구
▶ 선교 중 “개도국 리더양성” 빈곤국 유학생 15명 후원... “고려인·조선족으로 확대”
■ 인터뷰 - 한아장학재단 박선 이사장
돈을 잘 버는 사람은 많지만, 돈을 잘 쓰는 사람은 드물다. 돈을 잘 쓴다는 것은, 결국 이웃을 위해 내놓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배고픈 이웃에게는 밥을 주는 것도 잘하는 일이지만, 더 이상 배고프지 않도록 교육시키는 일은 훨씬 더 잘하는 일이다. 개발도상국의 여학생 15명을 이화여대로 보내 전액 장학금으로 공부시키고 있는 박선(80) 한아장학재단 이사장은 그런 점에서 귀감이 되는 인물이다. 학생 한 명당 1년에 1만달러씩 4년 동안 4만달러. 15명이면 60만달러나 되는 돈을 선뜻 기증한 박선 여사는 “자녀들에게 돈을 남겨주기보다 더 큰 정신적 가치를 남겨주기로 했다”고 말한다. 자랑도 아닌 걸 자랑하기 싫다고 한사코 인터뷰를 사양했던 그는 “다른 사람들도 주머니를 열 수 있게 써 달라”는 조건 아닌 부탁으로 말문을 열었다.
“주위에 돈 많은 사람이 무척 많아요. 저와는 비교도 안 될만큼 큰 부자들이죠. 그런데 죽어도 지갑을 안 열어요. 그 사람들 자식도 못줍니다. 아까워서 못주고, 주고도 후회하잖아요. 자녀에게 유형의 재산을 남기는 것은 아이들의 뼈와 살을 무르게 하는 독이 됩니다. 하지만 무형의 가치를 남겨주면 그 선한 영향력은 계산할 수 없는 엄청난 유산이 되지요”
박선씨는 1970~80년대 화장품 업계에서 ‘세일즈의 교본’이라 불려도 좋을 만큼 입지전적 성공을 거둔 여성이다. “보따리장수 박선입니다” 하면 뉴욕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는 그는 앰웨이, 폴라, 라피네를 거쳐 ‘한아 뷰티 앤 헬스’(Hanah Beauty & Health)를 창업하기까지, 무슨 물건이든지 손만 대면 불티나게 팔렸고, 입을 열면 장 서듯이 사람이 모였다는 전설의 세일즈우먼이었다.
그런 박선씨가 특별히 빈곤국 여성들의 교육에 마음을 쏟게 된 것은 한국 여성교육을 위해 평생을 바쳤던 김활란 여사의 영향이 크다. 6.25때 피난지에서 이화여대를 다녔던 그는 김활란 여사가 학교를 위해 사방으로 다니며 모금하는 모습을 보았고, ‘기독교 문학’ 수업시간에 직접 가르침을 받았으며, 그분의 인품을 가까이서 체험하며 자신의 롤모델로 삼게 됐다.
약대(56년 졸업)를 나와 약국을 경영했던 그는 남편과 일찍 사별하면서 1973년 아이 둘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왔다. 뉴저지의 세인트피터스 하스피틀에서 5년 일하다가 나와서 비즈니스를 시작한 것이 45세쯤, 앰웨이(Amway) 세일즈를 시작했는데 자신도 그렇게 잘할 줄은 몰랐다고 한다. 세미나, 강의 쫓아다니며 마케팅 공부를 하고 발로 뛰었던 ‘보따리장수 박선’은 불과 몇 달만에 세일즈계의 신데렐라가 되었고 여러 회사들이 그를 모셔가려고 혈안이 됐다.
“한 해에 자동차가 3대나 생기기도 했어요. 저를 잡으려고 인센티브로 새 차를 마구 보내준 거예요. 샤크리 비타민회사와 메리케이 화장품회사가 캐딜락을 보냈고, 폴라에서는 BMW를 선물했죠. 80달러 가지고 시작한 비즈니스로 3년 안에 큰집 사고, 맨해턴 메이시백화점 바로 앞에 사무실을 얻었습니다”
앰웨이를 그만두고 폴라 화장품으로 옮겼을 때, 막 미국시장을 접으려던 폴라는 그의 등장으로 완전히 기사회생했다. 자기네가 10년 해도 못한 마케팅을 박씨는 50개 주를 뛰어다니며 순식간에 해냈고, 본사에서 중역들이 날아와 록펠러센터 27층에 사무실을 내줬다.
“나이 40에 가방 들고 뛰려는 사람이 없었어요. 나는 아이들 위해 뭐든지 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구요. 나이도 적당히 먹었고, 적당히 배웠고 해서 잘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사람 포섭인데, 신기하게 내가 애쓰지 않아도 사람들이 줄줄 따라 왔어요”
네트웍이나 마케팅 개념이 없던 당시에 기막힌 인맥관리로 획기적인 성공을 거둔 그는 무조건 남보다 많이 일했고, 많이 뿌렸다고 한다. “세일즈는 많이 풀면 된다”는 그는 “많이 줘도 남는 게 장사이기 때문에 내가 받은 인센티브 이상으로 자꾸 풀면 성공한다”고 비결을 말한다.
그렇게 한 2년여 열심히 뛰고 85년 폴라에서 나와 한국화장품 라피네 세일즈를 시작한 게 50세. 그때 LA에 왔고, 90년까지 동부와 서부를 왕복하며 한국 화장품을 팔았다.
“마켓마다 있는 화장품 코너, 내가 만든 거예요. 사람이 많이 모이는 데를 찾다가 샤핑센터마다 찾아다니며 자리 좀 달라고 해서 화장품 코너를 만들었죠. 대기업에서 전국 총대리점 판권을 따낸 것도 내가 처음인데, 아마 지금까지도 전무후무할 겁니다. 올 오어 나싱, 전체 아니면 안한다고 했더니 한국서 회장도 오고 사장도 오고 사흘 밤낮을 싸워 동서부를 같이 따냈죠. 6년하고 나왔습니다. 자기네 목표액 2배 팔아주고…”
그 다음에 창업한 ‘한아 뷰티 앤 헬스’는 일본서 뷰티 서플라이를 수입·판매하는 홀세일 전국대리점으로, 다른 사람들 위해 욕심 없이 만든 회사라고 한다.
“라피네 나오면서 기운 다 빠졌는데 나를 따라 나온 사람들 때문에 나이 55세에 다시 뛰었어요. 얘들이 나 하나 보고 나왔는데 힘이 돼줘야 하지 않겠어요? 아이템을 염색약 하나에 집중했는데 또 괜찮았어요. 하나님이 항상 원하는 것보다 많이 주시네요”
2007년 그는 이 업체를 딸에게 맡기고 세일즈 일선에서 은퇴했다. 그리고는 멕시코, 도미니카, 아프리카 등 선교지를 여행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려 했으나 곧 체력의 한계를 느끼게 됐다. 어느 날 아프리카 다녀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런 나라들을 위해 지도자를 키우는 게 나의 사명”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가 오랜 세월 후원해 온 두레선교회 김진홍 목사의 영향이기도 했다. 후진국에 밥을 갖다 주면 한도 끝도 없지만 리더를 하나 세워놓으면 이들의 미래가 달라진다는 깨우침이다.
당장 장학재단 만드는 일에 착수했고, 2009년 ‘한아장학재단’을 설립했다. 하지만 혼자 장학사업을 하는 일은 쉽지 않았고, 한국서 3명을 데려다 미국서 시도한 첫 프로그램은 실패로 끝났다. 2011년 모교를 방문했다가 이화여대에 같은 프로그램이 있다는 소리를 듣게 된 것은 꿈같은 일이었다. 이대가 120주년 기념사업으로 2006년 시작한 EGPP(Ewha Global Partnership Program)는 개발도상국의 여성 인재를 전액 장학금으로 교육시켜 자국의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장학 프로그램이다.
“제가 하려던 일과 똑같은 장학사업이었습니다. 너무 기뻐서 당장 협약식을 갖고 12명의 장학금을 약정했지요. 내가 시작하자 동생도 한 명, 친구도 한 명, 교회(토랜스 제일장로교회)에서도 한명 해서 지금은 15명이 됐어요. 이화라는 대목에 가지들을 직접 접붙였으니 이제 싹이 아니라 꽃이 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몽골 브룬디 베트남 르완다 태국 미얀마 등지에서 온 후원학생들 가운데 클린턴, 오바마 같은 인물이 나오기를 박선 이사장은 기도한다. 특별히 이들이 공부하면서 좋은 인맥과 네트웍을 쌓아서 훗날 각자 나라로 돌아가 일할 때 서로 힘이 되는 관계가 형성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박 이사장은 이화여대 후원이 끝나면 방향을 조금 바꿔 남학생 돕는 일도 추진하고 있다. 최근 온누리교회를 통해 러시아 고려인 2명을 돕기 시작한 그는 앞으로 조선족과 선교사 자녀, 그리고 통일 후 북한 아이들도 돕는 게 꿈이다. 그의 마지막 바람램은 좀 더 많은 사람이 글로벌 인재 양성에 동참하는 것.
“세일즈할 때는 내가 말 꺼내기 무섭게 사람들이 따라왔어요. 그래서 장학사업 시작할 때도 그렇게 잘 될 줄 알았죠. 하지만 돈 버는 일에는 다 따라와도 돈을 쓰자 하니 아무도 안 따라오네요. 유산 안 남기기 운동, 계몽이 많이 필요합니다”
이화여대는 3월26일 박선 여사의 팔순생일을 맞아 캠퍼스에서 특별행사를 마련한다. 후원 학생 15명에게 모두 한복을 입히고 온 가족과 관계자들을 초청하여 감사의 오찬을 나누는 뜻 깊은 잔치다. 함께 초청된 박 여사의 아들, 딸, 3명의 손주에게 이보다 더 큰 유산은 없을 것이다.
<글·사진 정숙희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