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4세 연령그룹 사망원인의 2위 차지
▶ “죽으려고 작심한 사람을 무슨 수로 말리나” 정치권도 대중도 자살 방지대책에 미온적
미국의 ‘자살 명소’로 통하는 샌프란시스코 베이의 금문교. 금문교가 개통된 이후 이제까지 1,600여명이 다리 아래로 투신, 목숨을 끊었다.
■ 자살, 미국인 13분마다 한명씩 선택
샌프란시스코 베이를 가로지르는 금문교의 안전철책 밖 철강들보에 한 중년 남성이 서있다. 이곳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듯 단정한 옷차림이다. 카키색 바지에 같은 색상의 와이셔츠를 입은 사내는 그러나 다리 아래로 뛰어내리지 못한 채 한참을 망설인다. ‘삶의 고통’과 ‘죽음의 공포’ 사이에서 엉거주춤한 모습이다. 그에게서 불과 몇피트 떨어진 곳의 철책 안쪽에 케빈 브릭스가 서있다. 가주 고속도로순찰대(CHP) 대원인 그는 죽음과 삶의 기로에 선 남성을 향해 “뛰어내리지 말라”며 끈질긴 설득작업을 벌인다.
지난 20년간 미국 최고의 ‘자살 명당’으로 꼽히는 금문교의 순찰을 담당해온 브릭스의 주된 업무는 바다로 투신하려는 사람들을 찾아내 다리 난간에서 끌어내리는 일이다.
그러나 죽기로 작정한 사람의 마음을 마지막 순간에 돌려놓기란 쉽지 않다. 설득작업의 실패율은 늘 성공률을 앞지른다. 2007년 2월의 그 날에도 브릭스의 설득은 먹히지 않았다.
난간 위의 남성은 브릭스와 다른 두 명의 경관이 합심해 펼친 진지한 구명노력에 적지 않게 마음이 움직인 듯 했다.
하지만 끝내 ‘마지막 결정’을 바꾸진 않았다.
세 차례나 브릭스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거둬들이기를 반복한 그는 “고마워요”라는 짤막한 말을 남긴 채 다리 위에서 사라졌다.
미국에서는 평균 13분마다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매년 약 4만명이 자살을 선택하는 셈이다.
1991년 이후 살인사건 발생건수가 절반으로 줄어든 것과 대조적으로 자살률은 상승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모든 사망원인 가운데 자살은 10위를 기록중이다. 15~34세 연령그룹만을 떼어놓고 보면 2위에 해당한다.
자살은 사회에 적지 않은 손해를 끼친다. 회생 시도에 들어가는 의료 경비와 노동손실 비용만도 줄잡아 100만달러에 달한다.
감정적 손실은 더욱 심각하다. 한 명이 자살을 선택할 때마다 평균 10명의 주변인들이 심리적 피해를 입게 된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돌이킬 수 없는 ‘자기파괴’ 행위를 선택을 한 사람들의 90%는 정신질환자다. 미국 내 정신병자의 수는 대략 1,000만명. 하지만 이들 대다수가 제대로 된 관리나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매튜 밀람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는 21세 되던 해 편집형 정신분열증 확진을 받았다. 매튜처럼 환상과 환청 증상을 보이는 분열증 환자의 절반은 자살을 시도하고 10명 중 1명이 뜻을 이룬다.
그는 발병 초기부터 유난히 죽음에 집착했다. 뒷동산에 자기가 묻힐 묘 자리를 팠고, 번개가 치는 날이면 뒤뜰로 나가 쏟아지는 비를 맞아가며 “내게 벼락을 때려 달라”고 하늘을 향해 악을 써댔다.
매튜의 증상을 악화시킨 것은 남동생 마이클이 갑작스런 죽음이었다. 마약중독자였던 마이클은 헤로인 과다복용으로 지난 2007년 18세의 나이로 세상을 등졌다.
동생이 떠난 후 몇 년 뒤 매튜에겐 양극성장애(조울증)와 정신분열증 판정이 연이어 떨어졌다. 2011년 스테이크 나이프로 자신의 목을 찔러 생애 첫 자살을 시도한 그는 2011년10월 옷장 안으로 들어가 자신이 만든 사제폭탄을 터뜨려 자폭했다.
사고 당시 매튜의 부모는 그를 병원으로 데려가기 위해 아래층에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들의 자살충동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증상이 심해지면 병원에 데려가는 것이 전부였다.
의료인들은 물론 연방 정부 당국과 일반인들 모두가 자살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느냐는 문제를 놓고 집단적인 혼란상태에 빠져 있다.
자살충동과 행위자체를 장애로 보아야 옳은지, 아니면 다른 정신질환의 한 증상으로 간주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합의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국립건강연구소(NIH)는 국내 최대 의료 연구비 제공처지만 자살방지 연구에 지원하는 기금은 얼마 되지 않는다.
유방암이라든지 전립선암 등과 같은 다른질병 연구에 투입하는 돈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다. 유방암이나 전립선암보다 자살로 인한 사망자 수가 훨씬 많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의아할 지경이다. 국립정신건강연구원(NIMH)의 연구예산은 2011년 이후 오히려 줄어들었다.
정치권도 자살방지책 마련에 별다른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 원래 정치인이란 눈치로 먹고사는 부류다. 유권자들이 중요시 하지 않은 이슈를 재빨리 내던지는 게 이들의 생존법이다.
자살률을 끌어내리려면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국가차원의 의지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실제 상황은 그 반대인 셈이다.
대중의 의식 밑바닥에는 “죽으려 작심한 사람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공통된 견해가 깔려 있다.
브릭스는 “아무리 자살을 결심했다 해도 금문교 철책 밖의 난간 위에 선 사람들은 십중팔구 망설이게 마련”이라며 “최악의 상황은 지나가는 운전자들이 ‘그냥 뛰어 내려’라고 소리를 지를 때 일어난다”고 말했다.
운전자들의 잔인한 야유는 ‘소용없는 노력’에 대한 일종의 짜증이다. 죽겠다고 기를 쓰는 사람을 붙잡고 헛수고 하느니보다 거기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을 살려고 버둥대는 사람을 거드는데 사용하는 편이 백번 낫다는 생각이다.
물론 여기에도 예외는 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치여 자살충동에 시달리는 참전군인을 바라보는 일반의 시각은 금문교 교각 위에 선 민간인에게 쏠리는 차가운 눈총과 현격한 온도차를 보인다.
이라크전과 아프간전 등 두 차례의 ‘지지 받지 못한 전쟁’에서 돌아온 참전군인들의 자살률이 치솟기 시작하자 대응책을 요구하는 여론이 폭발했고, 의회와 군은 여기에 반응했다.
통계에 따르면 2004년에서 2012년 사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참전 군인들의 수는 2,000여 명. 같은 기간 자살률이 세배 이상 뛰었다.
RAND는 최근 보고서에서 2005년 이후 PTSD 연구에 2억3,000만달러의 자금이 투입됐고, 이 가운데 3분의 2가 군에서 나왔다고 밝혔다. 적어도 참전군인에 관한 한 “죽기로 작정한 사람을 돕는 것은 헛수고”라는 통설이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해 CHP에서 은퇴한 브릭스는 “실의에 잠긴 사람들이 금문교 철책 밖으로 나가기 전에 우리 모두가 그들의 절망을 다스려줄 방도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뛰어내리지 말라”는 경관 한두 명의 애원은 자살을 선택한 사람이 짊어진 절망의 무게를 덜어주지 못한다. 브릭스의 경험에 의하면 “그들이 다리 위에 섰을 때 게임은 이미 거의 끝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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