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파트서 쫓겨난 후 살던 동네에 텐트 치고 눌러앉아
▶ 일부는 스키드로 미화작업으로 인근 도시로 밀려나... 노숙자 10%는 참전군인 출신 통계에 안타까움 더해
LA 다운타운의 스키드로에서 미구엘 헤르난데즈(59)가 물을 마시고 있다.
■ LA 도심 외곽으로 뻗어가는 홈리스들
루이스 모랄레스(49)는 삶의 조난자다. 수년 전 아내를 잃고, 직장에서 내쳐진 그는 4개월 전 렌트비 체납으로 하일랜드팍의 아파트에서 강제퇴거를 당했다. 모랄레스는 현재 아로요 세코의 강바닥에 텐트를 치고 양아들 아서 발렌수엘라(18) 함께 살고 있다. 물이 거의 마른 강바닥을 따라 함부로 자라난 잡초로 그의 텐트는 행인들의 시야에서 반쯤 가려져 있다. 누추한 천막 안에는 성경구절이 적힌 액자와 원숭이 인형이 놓여 있고. 인근 공원에서 자전거로 실어 나른 물이 주전자에 담긴 채 등산용 버너 위에서 끓고 있다.
세로요 세코의 마른 강바닥에 살고 있는 홈리스는 그들만이 아니다. 바로 곁에는 이웃사촌인 자니 살라자르의 천막이 서있다. 살라자르는 망가진 자전거와 부서진 컴퓨터 스크린을 수선해 주는 것으로 연명한다. 수리비가 싸다는 입소문 탓에 그의 작업장을 찾는 인근 빈민촌 주민들이 더러 있다.
강의 위쪽에는 모랄레스가 수 년 동안 알고 지내던 남매가 천막생활을 하고 있고 아래쪽 교각 근처에는 세 쌍의 부부가 둥지를 틀었다.
이들은 모두 하일랜드팍에서 아파트 생활을 하다 퇴거당한 ‘동병상린’의 동지들이다.
‘낯가림’이 심한 이들은 타 지역 노숙자들이 끼어드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외부인이 나타나면 기존 거주자들이 똘똘 뭉쳐 밀어낸다. 그렇다고 기득권을 지닌 터줏대감과 새로 발을 들여놓으려는 외부세력 사이에 험악한 몸싸움이 일어나는 일은 거의 없다. 텃세에 부딪힌 신입들은 살림도구를 실은 카트를 끌며 몸을 누일 곳을 찾아 이동한다.
홈리스는 폭력배와는 다르다. 집도 절도 없이 거리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주변의 ‘갑질’에 제대로 저항조차 못하는 무기력한 ‘수퍼 을’이다. 밀면 밀리는 게 몸에 밴 이들의 습성이다.
지난 2년간 ‘스키드로’로 불리는 LA 다운타운의 홈리스 텐트촌은 기존의 경계에서 벗어나 에코팍과 사우스LA를 연결하는 프리웨이와 언더패스 교각을 따라 뻗어나갔다.
이러다 보니 주변 주민들이 볼멘소리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시-카운티 통합기관인 LA 홈리스서비스국에 따르면 2013년에 479건이었던 해당 지역의 홈리스 관련 민원전화는 2014년에 767건으로 늘어났다. 1년 사이에 60%가 폭증한 셈이다.
다른 곳은 몰라도 “내 뒤뜰 만은 안 된다”는 님비(Nimby: Not In My Back Yard) 현상, 즉 지역 이기주의 탓이다. 하긴 냄새 나고 지저분한 홈리스들이 집단 유입을 반기는 커뮤니티가 있을 리 없다.
홈리스들이 밀고 들어온 지역의 거주민들은 LA 시정부가 다운타운의 노숙자들을 주변 커뮤니티로 이동시키고 있다는 일종의 ‘음모론’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시 정부는 “절대 그렇지 않다”며 손사래를 친다.
도심개발 프로젝트와 스키드로 청소작업으로 일부 홈리스들이 LA 도심에서 밀려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조사 결과 타 지역 노숙자 텐트촌 구성원들은 거의 예외 없이 해당 지역 출신들로 채워져 있다는 설명이다.
치솟는 렌트비와 연이은 쉼터 폐쇄, 재정지원 삭감 등으로 거처를 잃은 채 하일랜드팍과 보일하이츠 지역에서 퇴거당한 주민들이 해당 커뮤니티에 눌러앉아 노숙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LA경찰국 노스이스트 디비전의 지나 코반 경장도 이 지역에 들어선 소형 텐트촌은 기존 노숙 인구의 이동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현지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생전 처음 거리로 내몰린 초짜들은 한사코 자신의 연고지에 머물러 있으려 든다”고 말했다.
세로요 세코의 마른 강바닥에 텐트를 친 자전거 수리공 살라자르가 대표적인 케이스에 속한다. 그는 오랫동안 살아온 동네에서 홈리스 생활을 하자니 “너무 쪽팔리지만 낯선 곳에 텐트를 치려다 행여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라 수치감을 무릅쓰고 이곳에 눌러 앉았다”고 털어놓았다. 다른 무엇보다 안전이 최우선 고려사항이라는 얘기다.
살라자르는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인근 마켓에 들렀다가 평소 안면이 있던 사람들과 마주칠 때가 가장 곤혹스럽다고 했다. 늘 그가 먼저 인사를 건네지만 상대방은 모른 척 외면하거나 불쾌한 표정을 짓기 일쑤다.
왕년의 이웃들은 이제 더 이상 그와 말을 섞으려 들지 않는다. 꼬질꼬질한 ‘궁핍 바이러스’라도 옮지 않을까, 행여 같은 부류로 얕잡아 보이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사람들의 냉랭한 눈길과 마주칠 때마다 울컥 눈물이 솟는다며 그는 아프게 울었다.
LA 다운타운 이외 지역에 커뮤니티 홈리스 텐트촌이 확산되는 이유는 또 있다.
법원의 결정에 따라 지방자치 단체들이 홈리스 그룹 단속을 중단한 것이 ‘동네 노숙자’ 증가에 힘을 보탰다.
실제로 지난 2년 사이에 노숙 인구가 늘어났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관계당국은 3일부터 5일까지 사흘간 6,000명의 자원봉사자들을 동원, LA카운티의 홈리스 인구조사를 벌였다.
자원봉사자들은 관내 골목과 강바닥, RV 등에서 잠자리를 해결하는 홈리스의 머릿수를 계수하는 것은 물론 이들을 대상으로 성적 정체성, 가정폭력, 전과기록, 군복무 연수 등에 관해 질문했다. 홈리스 인구조사는 2년마다 한 번씩 정기적으로 실시되지만 자원봉사자들이 신상질문을 던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홈리스 가운데는 해외 참전군인들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2년 전 조사를 통해 파악된 LA카운티의 노숙자 인구는 3만8,000명. 이들 중 약 10%가 해외 참전군인 출신이다. 이것이 이슈가 되자 에릭 가세티 LA시장은 “2015년 말까지 거리에서 생활하고 있는 3,400명의 참전 군인들에게 일정한 숙소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행여부는 두고 볼 일이다.
노숙자촌의 중심인 LA 다운타운의 스키드로가 2년 전부터 주변에서 일고 있는 도심 미화사업으로 위축되면서 이곳의 노숙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근처인 18가와 호프 스트릿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는 세인트 프란시스 센터와 캘버리 채플이 제공하는 무료 식사와 샤워, 우편 서비스 등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미니 스키드로’가 형성됐다.
그러나 지속 여부는 불투명하다.
도시개발이 스테이플스 센터를 기점으로 동진하면서 호프 스트릿 홈리스 텐트촌을 향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캘버리 채플은 지난해 12월 재정적 이유로 호프 스트릿에 위치한 노숙자 서비스센터를 폐쇄했다.
노숙자 인구는 늘어 가는데 이들의 공간은 ‘커뮤니티 개발’에 치여 축소되고 있는 셈이다. 노숙자들에겐 내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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