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공한 쪽은 “내가 노력한 결과… 누리고 사는 것 당연”
▶ 가난한 쪽은 “바라는 것 없지만 뭔가 모르게 못 마땅해”
제이슨 시버가 뉴욕 하딩의 레스토랑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이 식당을 파트너와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 시버는 소득격차가 여동생과의 우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 빈부차로 멀어지는 피붙이들 의외로 많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지만 친 형제가 땅을 사면 온 몸이 다 아프다. 어릴 적 제 아무리 가까운 밀착관계를 유지했다 하더라도 성장한 뒤 소유의 격차가 벌어지면 단단했던 둘 사이의 우애에 틈이 생긴다. 성공한 사업가 제이슨 시버(37)와 그의 막내 여동생 재키도 예외가 아니다. 둘은 유난히 다정한 오누이였다. 오빠는 여동생의 자상한 멘토이자 든든한 보호자였다. 하지만 물샐 틈 없었던 제이슨과 재키의 관계는 둘 사이의 경제력 차이가 커지면서 균열을 일으켰다. 오빠가 ‘땅’을 사자 여동생이 ‘몸살’에 걸린 셈이다.
제이슨은 “황당하다”고 했다.
돈을 벌기 위해 남부끄러운 일을 한 적도 없고, 여동생에게 개인적으로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둘 사이가 멀어진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푸념이다.
제이슨은 돈을 벌기 위해 만만치 않은 대가를 치렀다고 주장한다. 대학 재학기간 내내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매달렸고, 취업 후에는 직장에서 전심전력으로 일했다. 지금도 하루 12시간 이상을 일터에서 보낸다. 사실 그가 일군 성공이 ‘정직한 땀’의 결실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제이슨은 자신의 끈질긴 설득에도 불구하고 재키가 대학진학을 거부한 것을 못내 아쉬워한다. 그것이 둘 사이의 수입 격차를 벌여 놓은 가장 근본적인 요인이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오누이는 이제 거의 말을 섞지 않는다. 언제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눴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재키는 “오빠에게 실망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무엇이 그리 실망스러웠는지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다문다. 실망이라기보다는 휴가철마다 국내외 각지의 유명 관광지를 누비며 호화여행을 즐기는 오빠가 부러운 것일 수 있다. 본래 시기와 질투는 상대와의 친밀도에 비례해 몸피를 불리는 속성을 지닌다.
오누이의 이야기는 새로울 게 없다.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스토리다.
한 울타리, 같은 부모 아래서 동일한 대접을 받고 자란 피붙이들이 성인이 된 후 서로 판이하게 다른 재정적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경우는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2009년부터 2012년에 이르는 기간 미국 내 최상위 1%에 해당하는 가정의 연간 소득은 무려 31%가 증가했다. 물론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수치다.
UC버클리의 경제학자 엠마누엘 사에즈에 따르면 최상위 1%를 제외한 나머지 가구의 평균소득은 0.4% 올라가는데 그쳤다. 가진 자는 더 많이 벌고, 없는 자는 더 못 버는 ‘부익부 빈익빈’의 사이클이 더욱 빠른 속도로 회전하고 있다는 얘기다.
같은 모태에서 태어났지만 각기 서로 다른 경제계층에 편입된 형제나 자매의 소득격차도 마찬가지로 확대되고 있는 셈이다.
가족 사이의 수입 차이로 마음의 병을 얻어 병원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 역시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35년간 정신치료 전문의로 활동해 온 얀나 마라무드 스미스 박사에 따르면 환자들의 불평은 “왜 내 동생이 가입한 컨트리클럽에 나는 들어갈 수 없느냐” “돈을 잘 버는 형이 어째서 나를 도와주지 않느냐” 등등 거기서 거기다. 처지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도움에 인색한 ‘조막손’ 오빠가 야속하고 원망스러워진다.
1990년대에 고급 원단 판매로 떼돈을 번 스튜어트 스나이더(53)는 랜드로버를 몰고 롤렉스 시계를 찬 나를 형과 여동생이 자랑스러워할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형은 죽을 때까지 의절했고, 여동생은 그를 투명인간처럼 대했다. 영구불변일 줄 알았던 형제간 우애는 사기그릇처럼 간단하게 깨졌다.
형제와 자매 사이에 소득격차가 벌어지는 이유와 계층 간 경제력의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별반 다르지 않다.
일반인들은 빈부격차를 만들어내는 요인을 개인의 노력과 선택에서 찾는다. 사회적 불평등이라든지 개별적인 지력이나 추진력의 차이는 결정적 이유로 간주되지 않는다. 퓨리서치 센터가 자체 서베이 결과를 분석해 내린 결론이다.
제이슨이 여동생 재키에게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대학진학을 강권한 것은 10년 전의 일이었다. 당시 재키는 웨이트레스 일을 때려치우고 남자 친구를 따라 타지로 이주하려고 준비하던 중이었다.
제이슨은 “대학진학을 포기하면 열등한 삶을 살게 된다”고 경고했으나 재키는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하도록 내버려두라”며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MBA 과정을 마친 제이슨은 맨해턴의 상품교역 업체에 취업해 큰돈을 벌었고, 소득에 걸맞은 호사를 누렸다.
반면 재키는 제약회사에 취직해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지만 대학 졸업장이 없다는 이유로 내리 세 번이나 승진 인사에서 물을 먹었다.
재키는 “10년 전 오빠의 충고를 따랐어야 했다”고 시인한다. 대학진학 포기라는 섣부른 선택으로 경제적 불이익을 자초했다는 점도 인정한다.
스펙 개선을 위해 야간대학에 다니는 그녀는 오빠의 성공이 올바른 선택과 뼈 깎는 노력의 결과임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눈덩이처럼 재산을 증식해 가는 오빠를 지켜보면서 은근히 부아가 끓었던 것 역시 사실이라고 했다.
시기나 질시는 비교를 통해 들어오는 감정이다. 문제는 가장 가까운 사람일수록 직접적인 비교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당연히 ‘나’보다 월등히 잘 사는 피붙이는 부정적인 반응을 가져오게 된다.
그러나 재키는 이제 더 이상 오빠를 부러워하거나 시기하지 않는다. 비교의 기준을 경제적 여유에서 전반적인 삶의 질로 확대해 보면 오빠에 비해 그리 꿀릴 것이 없다는 깨우침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대학진학 대신 결혼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돈이 없어 휴가철 호화여행은 꿈도 못 꾸지만 남편과 함께 하는 캠핑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제이슨의 생각에도 변화가 왔다.
2015년 시애틀의 상품거래중개 전문회사로 직장을 옮긴 제이슨은 점차 일을 줄이고 가족과 지내는 시간을 늘릴 작정이다.
돌이켜보면 지금의 물질적 성공을 가꾸느라 너무 많은 것을 포기했다.
“아주 가끔씩” 그는 재키가 누리고 있는 소박한 삶이 부러워진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여동생이 자기보다 현명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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