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 선거시즌에 TPP 추진 동력 잃을 수도
▶ 중, 다자간 협상으로 회원국과 경제블락 제안
지구촌 경제영토의 재편을 둘러싼 G2(미국·중국)의 주도권 다툼이 다음달 10~11일(현지시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전 세계 경제의 약 30%, 인구의 최대 절반에 육박하는 아시아태평양이라는 거대시장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자국에 유리한 경제블락을 쌓기 위해 스퍼트를 내고 있다.
▧ 급한 미국
이번 패권다툼에서 급한 쪽은 미국이다.
차기 대통령 선거 정국으로 돌입하기 전인 내년 상반기까지 결판을 내지 못하면 협상 추동력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에서 국가 간 무역·투자자유화 협상은 일반적으로 자국내 이해집단의 심기를 건드려 선거에 악재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이 이번 무역전쟁의 승부를 내년 상반기까지 내지 못하면 이후 미국 주도의 무역전쟁은 장기간 추동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고 국내 통상 당국자는 내다봤다.
반면 중국 주도의 무역블락은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고 어젠다 역시 한층 확대되는 추세다.
현재 미국은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 중국은 역내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과 아시아태평양 자유무역지대(FTAAP)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애당초 이러한 경제블락은 중소 무역국들이 제안한 것이었으나G2인 미국·중국이 자국의 무역 영토를 확대한다는 차원에서 자신들이 주도하는 블락으로 바꿔놓았다.
실제로 TPP의 모태는 지난 2006년 싱가포르와 뉴질랜드·칠레·브루나이 등 4개국이 출범시킨 ‘P4’였다.
이는 역내 관세·비관세 장벽 등을 낮추는 일종의 자유무역협정(FTA)이었는데 2008년 뒤늦게 미국이 관심을 표명하고 판을 키웠다.
이에 이듬해 미국·호주·페루·베트남과 기존의 P4 회원국 등 8개국이협상을 개시해 TPP가 본격적으로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미국은 지속적으로 주요 동맹국·통상국들에 직ㆍ간접적인 압력을 넣어 TPP 참여를 독려했다.
그 결과 지난해까지 4개국(일본·캐나다·멕시코·말레이시아)이 더 협상에 참여해 현재 총 12개국이 협상테이블에 앉아 있다.
특히 자국 농산물 보호 등을 위해 끝까지 버티던 일본이 지난해 전격TPP 참여를 선언한 것이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일본의 가세는 TPP에 양날의 칼이 됐다.
일본이 관세 전면철폐를 요구하는 미국에 대해 퇴짜를 놓으며 몸값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쌀·보리·쇠고기·돼지고기·설탕 등 5개 품목의 관세 존폐여부가 결정적 문제였다.
25~27일 호주 시드니에서 진행된 TPP 각료회의 이후에는 앤드루 롭 호주 통상장관이 "협상에 중대한 진전이 있었다"고 28일 밝혀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로이터 등 주요 외신들은 여전히 미일 간 이견이 해결되지못해 연내 협상타결은 불투명하다고 분석했다.
▧ 느긋한 중국
미국에 비해 중국은 상대적으로 느긋하게 RCEP과 FTAAP 카드를 활용하고 있다.
1994년 APEC 정상들이 역내 무역투자 자유화를 2010~2020년 중 이루자고 합의한 것이 모태가 됐다. 이후 김대중 대통령이 한ㆍ중ㆍ일과 아세안(ASEAN) 회원국 10개국 등 총 13개국이 참여하는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EAFTA)를 제안해 호응을 얻었고 2004년에는 APEC의 한 자문기구가이 같은 기조를 이어받아 ‘FTAAP’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이후 주도권을 잡으려는 일본이 여기에 인도·호주·뉴질랜드를 더한 16개국 규모의 동아시아 포괄적 경제파트너십(CEPEA)을 역제안하면서 한층판이 커졌으나 미국 발 TPP 바람에 묻혀 한동안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그러던 것이 TPP에 맞불을 놓으려는 중국의 주도 속에 대륙 중심의 경제블락화 논의가 재점화됐다.
2011년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RCEP의 틀을 짜자는 합의가 나왔고 우리나라 역시 APEC에서 역내 여러 FTA를 묶어 다자간 경제블락인 FTAAP로 전환하자고 제안해 호응을 얻은 것이다.
특히 RCEP는 CEPEA와 같은 구성원으로 중국의 주도 속에 추진돼 2012년 11월 협상개시 선언이 이뤄졌고 최근까지 5차 협상이 심도 있게 진행되고 있다. 아울러 중국은 다음달 APEC 정상회의에서 FTAAP가 주요 의제가 될 것이라고 밝히며 경제블락화의 외연을 한층 확대하려 하고 있다.
다만 중국 주도의 블락 역시 앞날이 만만치는 않다.
우선 역내 중심 국가인 한ㆍ중ㆍ일 3국이 서로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의 철폐 수준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아세안 회원국들도 지적재산권의 과다한 보호 요구완화, 공기업과 공정경쟁 요구 불가 등을 밝히며 특혜를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당초 내년 협상 완결을 목표로 삼고 있는 RCEP는 데드라인 준수가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FTAAP는 개념만 잡힌 상태로 협상 등 구체적인 실무절차는 아직 준비된 것이 없는 상태다.
▧ 한국에 미치는 영향
G2의 패권 전쟁은 한국에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안겨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운신의 폭을 좁히지 말고 논의의 이니셔티브를 쥘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한ㆍ중 FTA 문제에 정통한 중국 측 인사는 서울경제신문에 “중국은 이번 APEC에서 한ㆍ중 FTA 타결이라는 이벤트를 하고 싶어 한다"며 “지난주 베이징 분과회담에서 농산품 등 민감 품목에 대한 협상이 진전중”이라고 말했다. G2의 패권 다툼속에서 한국이 충분히 국익을 살릴 수 있음을 보여준 대목이다.
김한권 아산정책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은 “TPP·AIIB 등은 한국에 새로운 기회"라며 “다만 (강대국들의)일방적인 선택을 강요받기보다 주도적인 입장에서 전략적 연결고리 역할을 하며 (정치·경제) 파트너로서 위상을 높여나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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