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최초의 한인 경찰국장에 사진신부의 아들로 태어나 초기 한인이민자들을 대표하고 있는 리 도나휴 전 국장이 자신의 삶을 회고한다.
우선 나의 가족을 소개하자면 우리 어머니는 1920년 당시 사진신부로 하와이에 와서 첫 남편인 김승연씨와 결혼했었는데 1933년 그가 나와는 이복형제가 되는 2남2녀를 남겨둔 상태로 세상을 떠나게 됐고 1937년 당시 미 해군으로 복무 중이던 나의 아버지와 만나 1938년 혼인했다. 아버지는 이후 제대해 진주만에서 민간인 자격으로 근무를 시작했고 나는 두 분 사이에서 1942년에 태어나 와이키키 초등학교와 링컨 초등학교, 워싱턴 중학교를 나와 1960년 맥킨리 고교를 졸업했다. 내 이복 누나인 베시 최는 미 본토에 오랫동안 나가서 살다가 하와이로 돌아와 동서문화센터에 연구원으로 온 한국인 최삼권 박사와 결혼했고 훗날 남편이 카이스트의 교수로 임용된 이후로는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또 다른 누나인 그레이스는 LA에서 결혼해 3명의 자녀를 두고 있고, 형인 존은 1946년 미 육군에 입대해 10년간 유럽에 나가있다가 하와이로 돌아와 미 산림부의 엔지니어로 근무하며 한국에서 온 테레사라는 여성을 만나 결혼,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또 다른 형인 케네스는 해군에 지원에 사이판과 캘리포니아에서 복무한 후 ‘벨 전화연구소’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했고 형수를 만나 3명의 자녀와 함게 LA에서 거주 중이다.
부모님은 내가 5살 때 이혼해 아버지는 본토로 떠났고 그 후로 어머니 혼자서 나와 형제자매들을 키우셨다. 내가 11살이 되자 어머니는 본토에 가서 더 넓은 세상을 보라고 하시며 LA의 누나네 집으로 나를 보내셨고 14살에 하와이로 돌아왔다.
젊은 시절의 내 생활은 무척 단조로웠다. 방과후는 해변가나 영화관, 볼링장에서 시간을 보냈고 9살부터 다니던 한국어교실에서는 ‘애국가’를 배워 혼자서도 부를 수 있게 된 기억이 난다.
경찰이 되고 싶었던 것은 고등학교 때부터이고 18살에 아내인 루실과 결혼해 건축현장에서 냉방기술 견습공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올해 9월로 결혼한지 54주년을 맞는 아내와 나 사이에는 현재 4명의 자식을 두고 있다.
1963년 당시 LA 경찰국과 호놀룰루 경찰국(HPD)이 합동으로 신규인력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해 모든 채용절차를 무사히 통과했고 1964년 7월1일부로 호놀룰루 경찰국에 출근하기 시작했다.
경찰국에서는 홍보과 소속으로 펄시티 경찰서에 순찰인원으로 배속돼 근무했고 우리 가족은 1971년까지 퍼시픽 팰리세이드에 거주하다 하와이카이로 이사했다. 당시 수사과의 형사로 승진했고 이때 짬짬이 호놀룰루 커뮤니티 칼리지와 샤미나드 대학을 다니며 고등교육을 마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1976년에는 순찰과로 보직을 옮겼고 경위로 승진한 후에는 마약 및 특수범죄전담반에서 근무했다. 1980년에 경감으로 승진해 순찰 및 내사과에서 일하다 다시 펄시티 경찰서로 자리르르 옮겼고 1984년에 경정이 됐다. 1992년에는 부국장 보좌에 임명돼 현장지위를 맡았다. 1995년 부국장에, 그리고 1998년에 경찰국장에 임명됐다. 이렇게 40여 년을 일선 경관으로, 그리고 7년간을 경찰국장으로 근무했다.
경찰국장 재임 당시 남긴 가장 큰 업적은 1979년 당시 미국 내 55개 대도시중 불과 13개 도시만이 공식인증을 받은 상태였는데 이때 호놀룰루가 인증절차를 거쳐 이에 포함되게 된 것이다. 인증기관인 CALEA의 공식인증절차는 매우 어렵기로 소문이 나 있는데 이를 추진해 실현시킨 것이 가장 기억에 남고 또한 자부심을 갖게 한다. 더불어 인력난으로 어려웠던 HPD에 주 3일, 하루 12시간 근무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18번째로 큰 규모를 가진 호놀룰루 경찰국을 대표할 수 있었던 것에 무척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다.
미주 한인이민 100주년을 기념한 지난 2003년 이후 하와이 한인사회에서 목격되고 있는 점이라면 정말 많은 계층과 분야에서 한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인 변호사, 의사, 경찰관, 사업가들, 그리고 이 외에도 너무나 많은 업종에서 한인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2004년 경찰에서 은퇴한 이후 지금은 사설경비업체인 Securitas Security Services에서 라이선스 및 보안국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SSS를 소개하자면 고용면에서는 하와이에서 8번째로 많은 직원을 두고 있는 대형업체로 전체 직원만 3,000명에 달한다.
SSS외에도 따로 개인사업과 공수도 도장을 운영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한국인이면서 태권도를 하지 않고 가라데를 하냐고 묻는데 사실 내가 처음 무술을 배울 당시에는 태권도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내게는 8명의 손주와 3명의 증손주가 있다. 내 딸은 현재 아리조나 소재의 록히드-마틴에 근무하며 특별프로젝트들을 전담하고 있고 또 다른 딸 한 명은 카피올라니 병원에서 근무 중이다. 큰아들은 호놀룰루 경찰국에서 은퇴해 대형업체의 보안실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불행히도 우리부부의 막내아들은 2009년 당시의 오토바이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나 마음의 큰 아픔으로 남아있다.
자라나는 젊은 한인후손들에게는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점에 자부심을 가질 것을 당부하고 싶다. 나는 내 자신이 한인혈통이란 사실에 너무나도 자랑스럽기 때문이다. 미래를 준비할 때는 반드시 그에 필요한 교육과 전문분야의 라이선스를 취득할 것을 권한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을 존중하고 배려해 줄줄 알아야 함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자신의 가족들을 잘 대해야 한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친절하게(Be Nice!) 대해 줄 것을 부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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