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 새 국왕의 검소한 즉위식 알고 보니 누나 돈세탁 혐의 물타기
▶ 스웨덴 왕 스트립바 출입 구설수에 유흥업소 소유주 청부살인 의혹도
최근 스페인의 새 국왕으로 취임한 펠리페 6세는 즉위식에서 “스페인의 헌법이 의미하는 영토의 통일을 추구하겠다”고 선언했다. 올해11월 카탈루냐 지방에서 진행될 분리 독립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분리 독립을 막기에 앞서 더한 중책이 있다. 가족을 챙기는 일이다. 즉위 일주일 만에 누나인 크리스티나 공주가 비리혐의로 재판을 받을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크리스티나의 남편 우르단가린 공작이 비영리법인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600만유로(800만달러)를 빼돌려 쓴 혐의를 받고 있다. 크리스티나 역시 연구소 이사회 임원인데다 부동산 회사를 남편과 공동 소유해 돈세탁 의혹을 받고 있다. 이미 지난 2월에 크리스티나는 왕실 직계가족으로는 처음으로 이 사건과 관련해 참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출두해 판사의 심문을 받는등 왕실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 선대 후안 카를로스 1세의 조기 양위와 펠리페 6세의 검소한 즉위식은 추락한 왕실의 인기를 만회하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였다.
■갈수록 인기 잃는 유럽
왕실유럽의 여러 입헌군주국 왕실에서젊은 국왕들로 세대교체가 속속 진행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유럽 왕실의 양위바람은 지난해 1월 네덜란드 베아트릭스 여왕이 아들 알렉산더 왕세자에게 자리를 물려주면서촉발됐다. 그해 7월에는 벨기에 국왕 알베르 2세가 고령과 건강을 이유로 필리프 왕세자에게 왕위를 넘겼다. 가장 최근 사례가 지난 6월20일스페인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왕권을아들에게 양위한 것이다.
향후 세대교체가 점쳐지는 나라도여럿이다. 몇년 전 스트립바에 출입한 사실이 알려져 곤욕을 치렀던 스웨덴 칼 구스타브 16세가 대표적인경우다. 그는 청부업자를 고용해 유흥업소 소유주를 살해했다는 구설에도 휩싸였다. 스웨덴 왕실은 의혹을부인하고 있지만 국민들의 눈초리가고울 리 없다. 게다가 1973년 즉위한구스타브 16세는 재위기간만 40년이넘는다.
최근 방광염 등으로 잇따라 병원에입원하면서 건강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노르웨이 하랄 5세도 유력한 후보다. 역시 재위기간이 40년을넘었고 74세로 고령인 덴마크의 마르그레테 2세 여왕도 거론된다.
누구보다 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으는 사람은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다. 60년이 넘는 재위기간이나 90을 눈앞에 둔 나이만 보면 유럽 어느왕실보다 먼저 국왕에서 물러나야 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당장 양위는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대세다.
영국 왕실은 국왕이 살아 있는 동안 양위를 하지 않는 게 전통인데다고령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 여왕은 건강한 데다 대외활동도 왕성하다. 이혼 후 다이애나비가 비운의 죽음을 맞고, 카밀라 파커블스와 재혼한 찰스 왕세자의 지지도가 바닥을기고 있어 엘리자베스 여왕이 양위를 선뜻 결정하지 못한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왕정 존속 고민도 깊어
져유럽의 입헌군주제 실시 국가는 영국, 스페인, 네덜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리히텐슈타인, 벨기에, 스웨덴 등모두 12곳. 이중 ‘교황제’를 채택해교황청과 군주에게 법률 거부권과 내각 해산권을 부여한 리히텐슈타인을제외하면 ‘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않는다’는 일반적인 입헌군주국의 원칙을 따른다. 실질적인 국가 통치는총리가 맡고 국왕은 국가의 수장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만 있을 뿐이다.
유럽 왕실이 잇따라 세대교체를 하거나 할 가능성이 점쳐지는 것은 각국에서 왕정 존속에 대한 부정적인여론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왕실에 대한 지지는 대체로 여전히 높은편이다. 하지만 스페인처럼 경제위기로 국민이 고통 받는 가운데 왕실의사치행각 등 도덕적 추문이 불거질경우 군주제를 아예 폐지하라는 여론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논란이 되는 왕실의 추문과 도덕적인 문제의 유형도 다양하다. 스페인 왕실에 대한 여론을 결정적으로악화시킨 사람은 군부 독재를 청산하고 스페인에 민주주의를 정착시켜 국민들의 절대적 신임을 받아 오던 후안 카를로스 1세였다. 그는 2012년 4월 그가 엉덩이뼈 골절로 수술을 받은 것이 화제가 됐다.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 애인과 코끼리를 사냥하다 넘어졌던 것이 뒤늦게 밝혀져 지탄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그 해 9월뉴욕타임스가 스페인 왕가의 자산을23억유로(30억달러)라고 밝히자 여론은 더욱 들끓었다.
영국에서는 왕세손 윌리엄과 케이트 미들턴 부부가 최근 부엌을 고치는데 든 28만달러를 포함해 집수리에 750만달러를 사용하고, 앞서 2012년에 여행 경비로만 100만달러를 써논란을 일으켰다. 스웨덴은 왕위 계승 1순위인 빅토리아 공주가 2000년 결혼식 비용으로 290만달러를 지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이쏟아졌다. 벨기에 알베르 2세는 40대여성이 자신의 혼외 자식이라고 주장하고 나서 난처한 지경에 빠지는 일도 있었다.
‘그들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왕실을 향해 군주제를 폐지하자는 정치적인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군주제 폐지를 목표로 하는 유럽 공화주의운동동맹(AERM)은 “출생을이유로 신분에 차별을 두고 국가의최고위직이 능력에 따른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에서 배제된 것은 민주주의에서 용납될 수 없다”고 말한다. 영국시민단체 ‘리퍼블릭’도 “봉건시대 잔재인 군주제를 폐기하지 않는 한 진정한 근대국가가 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유럽 군주제 폐지로 가나
국민의 인식변화에 맞춰 실제로 군주제를 폐지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지난 6월 초 바르셀로나를 비롯한 스페인 도시 60여곳은 군주제 폐지 시위로 들끓었다. 남미 도시 30여곳에서도 이에 지지를 보내는 시위가벌어질 정도였다. 왕실의 사치행각과20%를 넘는 실업률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노르웨이에선 지난해 야당이 왕정폐지안을 의회에 상정했지만 간신히부결됐고 지난해 4월 네덜란드 왕위계승 때에는 왕실 폐지 여론이 비등했다.
군주제 폐지 운동과 함께 왕실의특권과 재정지원을 축소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벨기에는 지난해 처음으로 왕실에 세금을 부과하고 왕실의 급여를 삭감한다는 왕실 재정개혁안을 승인했다. 스페인의 카를로스 전 국왕은 재위 중이던 지난 5월말 30만유로(40만달러)인 자신의 연봉과, 14만유로(18만달러)인 펠리페 6세의 연봉을 7% 깎았다.
유럽에서 가장 많은 연간 약 2억파운드(3억3,600만달러)의 예산을 쓰는영국 왕실도 비판의 대상이다. 영국 하원은“ 씀씀이를 못 줄이겠다면 버킹엄궁을 비워 관광수입이라도 올려야 할것”이라며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스페인 정부는 카를로스 1세 퇴직이후 연금에 대한 입법을 해야 하지만 국내 여론이 워낙 나빠 연금 삭감안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네덜란드에서는 공화주의 운동단체 등을 중심으로“ 국왕이 하는 일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은 연봉을 받는다”며 국왕의 봉급을 삭감하자는 청원 운동이벌어지고 있다.
군주제 찬성론자들은 왕실이 국가 단합의 매개가 될 뿐 아니라 관광수익 등 경제에도 기여하는 순기능이 더 많다고 주장한다. 영국에서는2012년 여왕 즉위 60주년과 지난해왕세손 윌리엄-미들턴 부부의 아기인‘로열 베이비’ 탄생으로 왕실에 대한호감이 높아졌다. 전통적으로 왕족의결혼 등 왕실 행사는 국민의 관심과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으면서 일정 정도 국가 통합기능을 수행하는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네덜란드어권과 프랑스어권으로 분열될 위기에 놓인 국가를통합하지 못하는 벨기에 왕실과 연말까지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 여부국민투표가 예정된 영국 왕실은 정치적 통합 기능에 명백한 한계가 있다는 점도 분명해 보인다.
전문가들은 유럽의 입헌군주제가생존하기 위한 정답은 의외로 간단하다고 말한다. 왕실이 국민의 기대치에 맞는 도덕성과 행동을 보이면 된다는 것이다. 라르스 호브바케 소렌센 덴마크 코펜하겐대 교수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국가를 통합하는데기여하는 모범을 보이는 것만이 유럽왕실이 살 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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