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코딩 기법 활용한 DNA 검사결과 ‘경악’
▶ 시중 유통 인기제품 대량 수거해 조사 대부분이 곡물가루·잡초분말에 불과 표기된 약초성분 전혀 없는 것 허다 “원료 가열 땐 DNA 파괴” 해명 불구 “품질관리 문제·제조사 처벌해야” 여론
미국인은 연간 50억달러를 효과도 입증되지 않은 허벌 건강보조식품에 사용한다. 폐경기 여성의 홍조 억제에서 감기 치료, 기억력 향상에 이르기까지 건강보조식품 제조사들이 주장하는 효능은 다양하다. 그러나 조심해야 한다. 최근 DNA 검사결과에 따르면 이런 저런 건강효과를 갖고 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보조식품은 쌀과 잡초의 유전자 지문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쌀가루와 잡초 분말을 약초로 둔갑시켰다는 얘기다.
조사는 유전자 지문을 확인하는 DNA 바코딩(bar coding) 기법을 이용해 캐나다에서 이뤄졌다. DNA 바코딩은 캐나다 해산물 가공업체들의 사기행위를 잡아내는 도구로 주로 활용되어 왔다.
악덕업자들은 포장된 해산물의 내용을 종종 속인다. 포장지에 적힌 내용과 실제 알맹이가 다른 엉뚱한 상품을 내놓곤 한다. 이같은 사기행위를 잡아내는 데 바코딩만큼 유용한 도구도 없다.
캐나다 연구진은 12개 기업이 판매한 인기 보조식품 44병을 수거해 내용물의 유전자 지문을 조사했다.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충격적이었다. 상당수의 제품은 엉뚱한 첨가물로 이른바 ‘물 타기’를 했고, 또 다른 일부는 콩과 밀가루, 쌀 등 값싼 원료로 완전 바꿔치기 한 제품이었다.
조사결과가 발표되자 소비자 보호단체들과 과학자들은 한방 건강보조식품 제조업계를 한 묶음으로 싸잡아 비난했고, 수세에 몰린 업계 대표들은 “부분적인 문제를 지나치게 과장하고 있다”고 맞받아쳤다.
조사를 맡은 연구팀은 인기 약초들을 선별한 후 캐나다와 미국에서 이들을 주원료로 삼아 만든 건강보조식품을 무작위로 구입했다. 특정회사 제품을 겨냥한 표적조사라는 의혹을 피하기 위해 이들은 수거한 브랜드의 제조사를 공개하지 않았다.
조사결과 매년 수백만명의 미국인들이 감기치료제로 애용하는 에키네시아 보조식품에서 쓰디쓴 약초인 돼지풀아재비 분말이 대량으로 검출됐다.
돼지풀아재비는 인도와 호주가 원산지이며 발진과 구토, 복부팽만증 등과 연결된 잡초다.
그런가 하면 세인트 존스 월트(St. john’s Wort)의 상표명이 부착된 제품 가운데 두 병은 완전히 다른 내용물을 담고 있었다. 하나는 쌀가루였고, 또 다른 하는 강력 설사제인 알렉산드리아 센나였다. 앞서 세인트 존스 월트는 초기단계 우울증을 치료하는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기억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고 선전하는 깅코 빌로바는 흑호두를 비롯한 온갖 종류의 필러들이 섞여 있었다. 호두 앨러지 환자가 복용한다면 치명적인 위험에 처하게 된다.
연구원들이 조사한 44개의 건강보조식품 가운데 3분의 1은 해당 약초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코딩 기법을 사용해 조사해본 결과 라벨에 적힌 약초의 유전자 지문이 실제 내용물에서는 흔적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또한 상당수의 건강보조식품은 쌀, 콩, 귀리 등 필러로 쓰이는 곡물로 물 타기 된 상태였다.
건강보조식품에 관한 이전의 소규모 연구들도 라벨에 기재된 내용과 실제 성분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이번 연구는 DNA 검사라는 과학적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건강보조 식품업계의 이물질 섞기와 허위 라벨 부착 등에 관한 가장 신뢰할 만한 증거를 제공한다.
공공이익센터의 선임 영양학자인 데이빗 슈하르트는 “건강보조식품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대체의학의 한 부분으로 북미 지역에서만 2만9,000종의 허벌제품이 판매된다”고 지적하고 “캐나다의 연구는 많은 관련기업들의 품질관리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며 “그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도저히 용납할 수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어 “검사 결과가 이런데 어떻게 소비자들에게 허벌 건강보조제를 권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건강보조식품 관계자들도 상품의 성분 표시 라벨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시인하지만 새로운 연구 결과가 가리키는 것처럼 엉망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허벌 서플리먼트 사용을 장려하는 비영리 그룹 ‘아메리칸 보태니컬 카운슬’의 과학담당 최고책임자 스테판 가트너 박사는 캐나다 연구진이 사용한 바코딩 기술에 중대한 하자가 있기 때문에 조사 결과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바코딩 기술은 정제됐거나 고도의 가공을 거친 약초를 식별하지 못하는 맹점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반적으로 건강식품 보조업계의 품질관리에 허점이 있는 것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지만 발표된 내용만큼 나쁘지는 않다”고 강조했다.
DNA 바코딩은 약 10년 전 구엘프 대학에서 개발됐다. 이 기술을 사용하면 전체 게놈(유전정보)의 서열 분석을 하지 않고도 표준화된 유전자만을 조사해 모든 동식물의 종을 식별할 수 있다.
마치 마켓에서 바코드를 검색해 상품의 종류를 확인하는 것처럼 간단히 표준정보를 검색한 후 이를 구엘프 전자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20만종의 동식물 게놈의 260만개 바코드 기록과 대조하면 그것이 인삼인지, 도라지인지 곧바로 알 수 있다.
하지만 DNA 바코딩 기법이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다. 보조식품의 내용물이 무엇인지는 쉽게 확인 가능하지만 효능까지 파악하지는 못한다.
또한 내용물의 DNA를 포착하는 방식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탓에 원자재가 열이나 가공 등으로 DNA가 파괴된 경우에는 속수무책이 되고 만다.
스토니 브룩 유니버시티의 산부인과 교수인 데이빗 베이커는 폐경기 여성의 홍조현상 치료제로 인기를 끌고 있는 블랙 코호시라는 건강보조식품을 구입해 조사한 결과 4분의 1은 중국산 장식용 플랜트인 것으로 밝혀졌으며 인체에 유해한 노루삼을 담아 놓은 제품도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어린이용 페니실린 정제 10알 당 세 알이 가짜라면 난리가 날 것”이라며 “건강보조식품 열개 가운데 세 개가 가짜인데도 제조사들이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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