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디케어 수가 인하·기술발전 따른 경쟁심화에 병원들‘영상판독 전문회사’에 용역 맡겨 비용절감 전공의 자리찾기‘별 따기’… 무료봉사 자원도 거절
■ 연봉 40만달러 ‘꿈의 일자리’ 더 이상 아니다
흔히 방사선과로 불리는 영상의학과(radiology)는 전공의 과정을 선택해야 하는 의과대학생들 사이에 상당히 인기가 높았다. 다른 전공분야에 비해 일이 수월한 반면 보수는 최고 수준이니 수요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인턴들은 영상의학과를‘행복으로 향하는 길’(ROAD)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ROAD는 영상의학과(Radiology), 안과(ophthalmology), 마취과(anesthesiology)와 피부과(dermatology)의 머리 자를 따온 합성어다.
다시 말하자면 이들 4개 전공분야가 ‘행복한 미래’를 보장해 준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젠 그것도 ‘옛말’에 불과하다. 영상의학과는 더 이상 연봉 40만달러 이상을 챙길 수 있는 ‘꿈의 일자리’가 아니다.
물론 영상의학 전문의의 급여 수준은 아직도 가정의에 비해 두 배가량 높다.
그러나 전문분야 가운데 이들의 소득이 가장 가파른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의료업계에서 제일 잘 나가던 영상의학이 미래가 불투명한 전문분야로 위치가 바뀐 셈이다.
최근 엄청난 학비 융자금을 짊어진 채 졸업한 영상의학 전공자들은 직장을 잡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비교적 낮은 보수를 받는 전공의로 5~7년 간 일할 곳을 찾기조차도 힘들 정도다.
이런 현상을 반영하듯 인터넷 토론마당에는 ‘너무 늦기 전에’ 전공과정을 바꿔야 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는 영상의학 수련의들의 글이 자주 올라온다.
브롱크스 소재 세인트 바나바스 하스피틀의 12명의 방사선과 전공의들은 새로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갑갑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최근 이들 전원이 느닷없이 해고통지를 받은 것. 바나바스 하스피틀 측은 내년부터 원격 영상판독 회사에 용역을 줄 계획이다.
해고통지를 받은 12명 가운데 한 명인 루크 조지스(28)는 4년 전 30만달러의 빚을 진 채 의과대학을 졸업했다며 “방사선과가 돈을 쓸어 모으던 시절은 끝났다”고 한숨을 지었다.
영상의학 분야가 적성에 맞아 봉급이 급강하 추세를 보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선택을 한 것인데 졸업 후 훈련과정을 모두 마치고 일자리를 잡기가 이렇게까지 힘들 줄 몰랐다며 “전공의 과정을 마치지 않은 나를 채용할 곳은 없다”고 말했다.
메디케어 보험수가 인하와 기술적 진보에 따른 심한 경쟁, 각종 영상검사의 필요성에 대한 회의와 국고를 기본진료 분야로 돌리려는 시도가 어우러지면서 영상의학 전공의들의 설 땅은 점차 좁아지는 추세다.
영상의학과의 퇴조는 어찌 보면 이제까지 구가해 온 성공의 반작용이다. 지나친 첨단 영상검사의 수요를 줄이려는 노력이 진행됐고 그 결과 지난 2006년 이후 방사선 진료의 메디케어 보험수가는 12차례나 삭감대상에 올랐다. 그동안 잘려나간 예산만도 60억달러에 달한다.
방사선 전문의들의 ‘황금기’에 활동했던 텍사스의 폴 엘렌버그 박사는 영상진단 경비는 다른 헬스케어 아이템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자기공명영상(MRI), CT촬영 등이 진료별 수가제와 결합하면서 영상의학 수요를 지속 불가능한 수준으로 급속히 부풀린 탓이다. 너무 빠른 속도로 너무 높게 오르다보니 의료비 절감의 1차 대상으로 지목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영상의학의 퇴조를 불러온 또 하나의 요인은 ‘올빼미’ 영상판독 서비스사들의 등장이다.
미국 연방 의회는 1997년 메디케어의 지원을 받는 모든 전공에 상한선을 두었고 이로 인해 2001년 방사선 전공의들의 수도 제한이 됐다. 이 때문에 소규모 병원의 응급실은 밤에 쏟아져 들어오는 환자들의 영상진단 검사 결과를 판독할 전문 인력 부족사태를 빚게 됐다.
이 틈새를 노리고 등장한 것이 바로 영상판독 전문 업소들이다. 이들은 병원을 돌아다니며 판독을 필요로 하는 자료를 끌어 모은 뒤 이들을 해외에 거주하거나 아니면 자택근무를 하는 ‘일꾼’들에게 전달해 준다. 일꾼들은 방사선 전공과정을 모두 마친 사람들이다.
이들 서비사스들은 점차 영역을 확대, 야간 수요를 장악한데 이어 서서히 주간 일감까지 수주를 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루크 조지스를 비롯한 세인트 바나바스 하스피틀 영상의학 전공의 12명 전원을 몰아낼 정도로 성장했다.
세인트 바나바스의 3년차 레지던트인 니라브 셀라트는 “병원이 아닌 기업들이 영상자료 원격 판독을 장악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우리 같은 전공의들을 위한 전문적 훈련이 이루어질 수 없게 된다”며 “전공의들이 병원 밖으로 축출되도록 방치해도 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지난해 1,000만달러의 적자를 낸 세인트 바나바스 하스피틀은 18명의 방사선 전문의들로 구성된 그룹과 영상판독 전담계약을 체결했다.
외부 용역사를 이용하게 되면 인건비를 대폭 절약할 수 있기 때문에 병원 측으로서는 이들의 러브콜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해고통지를 받아든 세인트 바나바스의 3년차 전공의 데이빗 젤만은 다급한 마음에 병원에 무료봉사를 자원했다. 보수를 한 푼도 받지 않을 터이니 전공의 과정을 마치도록 해달라고 읍소했지만 병원 측은 ‘도덕적 이유’를 들어 거절했다. 전공의를 무료로 부린다는 말이 새어나가면 좋을 것이 없다는 설명이지만, 전공의 훈련에 들어가는 비용이 무료봉사의 경제적 효과보다 더 많다는 것이 실제 이유다.
반면 디트로이트 교외의 매라렌 매콤 병원은 제한적인 숫자의 전공의들에게 그들 스스로 비용을 감당하면서 레지던트 프로그램을 마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무예산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이 프로그램에 가입해 전공의 포지션을 유지하려면 연 6만5,000달러를 병원 측에 기부해야 한다. 이 가운데 4만2,000달러는 봉급이고 2,000달러가 기타 경비다. 모양새가 우습지만 병원은 이들로부터 돈을 받아 예산을 꾸려가며 전공의 훈련과정을 제공하게 된다.
한편 지난해 2만4,000명의 의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메드스케이프의 연봉 서베이에 따르면 방사선과와 정형외과 전문의들의 수입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왔으나 2010년과 2011년 사이 이들의 중간 연봉은 35만달러에서 31만5,000달러로 떨어졌다.
마취 전문 간호사들과 심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마취 전문의들의 2012년도 연봉은 5%가 줄어든 30만9,000달러였고 안과 전문의의 연 소득은 9%가 늘어난 27만달러였다.
피부과 전문의들의 연봉은 2%가 깎인 28만3,000달러 선이었지만 성형수술 붐으로 인해 메디케어 수가 인하와 관리의료의 영향을 가장 덜 받는 ‘황금어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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