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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인 얼굴’‘사적인 욕망’

조윤성 논설위원

입력일자: 2013-03-06 (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걸쳐 가장 뛰어난 미국의 여류작가로 꼽혔던 이디스 와튼은 1897년 ‘주택의 장식’(The Decorations of Houses)을 쓰면서 사람들은 돈이 많다고 가장하거나 자랑하지 말고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인기작가로 많은 돈을 번 와튼은 방이 35개나 되는 대저택에 살면서 하인 10여명의 시중을 받았다. 와튼은 자신이 쓴 글의 내용과는 판이하게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했다.

위대한 철학자로 인기와 지위를 좇는 인간의 욕망을 포기하라고 충고했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우울증을 한층 악화시킨 것은 동시대 철학자인 헤겔의 높은 인기였다. 쇼펜하우어는 헤겔의 강의에 자신보다 더 많은 청중들이 몰린다는 사실을 알고는 오랫동안 괴로워했다.

우리는 대부분 ‘페르소나’라고 불리는 사회적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남에게 드러내는 얼굴과 진짜 얼굴이 똑같은 경우는 드물다. 상황에 따라 혹은 상대에 따라 컬러렌즈 바꿔 끼우듯 조금씩 다른 얼굴들을 드러내곤 한다. 조성모가 리메이크해 크게 히트한 노래 ‘가시나무새’의 첫 가사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는 바로 이런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진짜 자기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얼굴을 팔아가며 명예와 돈, 그리고 권력을 추구한다면 다른 얘기가 된다. 이런 행위는 일종의 기만이기 때문이다. 공적으로는 도덕적인 얼굴을 드러내지만 사적으로는 탐욕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들을 찾아내기란 어렵지 않다. 최근 우리는 이런 인물들이 벌이는 기만의 퍼레이드를 신물이 날 정도로 목도하고 있다.

공직의 꽃이라 할 수 있을 장관자리에 앉겠다는 인사들의 도덕적 수준을 보면 절망적이다. 낮은 도덕성이야말로 출세의 필요조건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탈법과 비리 그 자체도 문제지만 이것이 평소 도덕과 윤리를 앞세우며 깨끗한 척 해 온 인사들의 맨 얼굴이라면 더 심각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황교안 법무장관 후보자는 법조계 안팎에 널리 알려져 있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사법연수원 시절 야간 신학대학까지 다녔을 정도이다. 그는 검사생활 중 기독교 편향적인 발언으로 여러 차례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기독교 정신으로 재소자들을 교화해야 재범률이 낮아진다는 주장에서부터 종교인 비과세, 일요일 공무원 시험 반대에 이르기까지 황 후보자는 근본주의 성향의 ‘독실한’ 믿음을 보여 왔다.

그런데 그가 살아온 모습은 이런 믿음과는 상당히 어긋나 보인다. 전관예우 논란과 증여세 탈루 의혹은 차치하더라도 주차위반으로 부과된 과태료를 상습적으로 체납하고 소득 기본공제를 이중으로 받아 푼돈을 챙긴 부분에 이르면 민망해지기까지 한다. 예수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돌리라는 말씀으로 세상법을 잘 지키라고 가르쳤다. 하늘나라법을 너무 숭상하다 보니 세상법은 우습게 여기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세상법의 엄격한 집행자가 되어야 할 법무장관으로서는 부적격이라 판단된다.

국방장관 후보로 지명된 인사도 마찬가지다. 군인은 명예를 먹고 사는 직업이다. 그도 군복을 입고 생활하는 동안 부하들 앞에서 명예에 죽고 사는 군인의 삶에 대해 수도 없이 얘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청문회를 통해 드러난 그의 이력을 들여다보면 과연 명예를 목숨처럼 여기는 참 군인으로 살아왔을까 라는 강한 의구심이 든다.

이런 이중성은 종교인들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 가장 큰 교회인 여의도 순복음 교회를 세운 조용기 목사가 배임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다. 아들 조희준씨가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적정가보다 3~4배 비싼 가격에 교회 돈으로 사들이도록 해 100억원대의 손실을 끼친 혐의다.

신도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바친 헌금을 개인적인 목적으로 남용하고 유용하는 것은 죄악이다. 그동안 조 목사와 아들들을 둘러싸고 터져 나온 각종 의혹들은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조 목사가 평생 강당에서 부르짖어 온 메시지와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

말과 행동 간의 싱크로율이 지나치게 떨어지면 위선이 된다. 겉 다르고 속 다른 것이 인간의 속성이라지만 이런 사람들이 너무 높은 자리에 앉거나 남을 가르치는 것만은 별로 보고 싶지 않다. ‘사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인물이 ‘공적인 얼굴’로는 위선의 연극을 계속한다면 자기 입에 올리는 소중한 가치들을 스스로 모욕하고 훼손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잘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하다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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