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는 프랑스가 자랑하는 3개의 미술관이 있다. 루브르와 오르세, 그리고 퐁피두 센터다. 루브르에는 고대-1848년까지, 오르세는 모네, 마네, 세잔, 고흐, 밀레 등 1848-1914년까지, 퐁피두 센터에는 1914년-현대까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3개의 미술관을 다 돌아보아야 프랑스 미술의 진수를 감상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가장 인상 깊었던 그림은 오르세 미술관 아래층에 걸려있는 밀레의 ‘만종’이다. 전에는 ‘만종’을 그저 그런 작품으로 생각했는데 가까이 가서 오리지널 진품을 보니까 그게 아니다. 황혼을 표현한 빛 처리가 뛰어나고 부부가 둘 다 기도하고 있지만 여자 쪽은 너무나 진지하고 남자 쪽은 여자의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소극적인 자세다. 신앙의 깊이가 대조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신앙심이 약했던 장 프랑수아 밀레는 자신을 이 그림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밀레의 ‘만종’은 감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그림에 등장한 두 남녀는 복장으로 보아 굉장히 가난한 농부인 것 같다. 그런데도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좋을 때만 골라서 이기적으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범사에 감사하는 모습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 기독교인 생활지침의 ABC처럼 되어 있지만 항상 감사하며 사는 것을 체질화 시키는 일은 어려운 일에 속한다.
감사한다는 것은 영혼의 성숙과정에 속한다. 따라서 감사한다는 것은 교만하지 않는 겸손한 자세를 뜻하며 고개를 숙일 줄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사람이 나쁜 것이 아니다. 사람 머릿속에 든 생각이 나쁘기 때문에 나쁜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다. 생각은 행동을 낳는다. 고로 인간은 평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자세가 결정되고 이는 곧 자신의 인격을 나타내는 척도가 된다.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자세는 곧 겸손, 검소, 사랑, 봉사, 화목과 직결되는 행복의 원천적인 요소다.
“범사에 감사하라”를 몸으로 보여주는 인상 깊은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지난여름 서울에서 설악산으로 가기위해 고속버스 터미널에 친구 몇 사람이 모였는데 그중 P씨가 선글래스를 집에 놓고 와 터미널 내에 있는 잡화점에 들렀다. 자신의 얼굴에 맞는 선글래스를 고르기 위해 여러 개를 들었다 놨다 하고 있는데 나이 먹은 가게 주인 남자가 다가오더니 “사지 않으려면 물건을 제자리에 놔두시오”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P씨가 “살지 안 살지 아저씨가 어떻게 알죠?”라고 물으니까 주인 남자 왈 “내가 이 장사 하루 이틀 했는 줄 아슈? 사람 척 보면 알아요. 안사도 좋으니까 물건 놓고 나가시오”라고 내뱉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나는 굉장히 불쾌했는데 P씨는 미소를 지으며 선글래스를 놓고 나왔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모욕 당하고 웃는 것은 또 뭐요?” 하고 핀잔을 주었더니 이 친구는 심각한 표정으로 “나는 아까 그 주인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업하는 사람이 손님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그 사람이 생생하게 보여 주었어요. 저 자신을 돌아보게 한 귀한 경험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가 교회에 열심히 나간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범사에 감사하라”를 몸으로 실천하는 것을 현장에서 보니 나도 자신을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추수감사절이 다가올 때마다 “감사란 무엇인가”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감사해요” “미안해요”를 부지런히 사용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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