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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과 이기주의

입력일자: 2009-11-06 (금)  
‘팬데믹’(Pandemic). 광범위한 지역에서 전염병이 번져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는 ‘대유행병’을 의미한다.

인류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전쟁보다 많은 생명을 빼앗긴 것이 전염병이었다. 한 번 창궐하면 말 그대로 ‘속수무책’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1300년대 시작된 ‘흑사병’은 수백 년간 유럽과 아시아를 휩쓸며 무려 7,500만 명이 사망하는 엄청난 재앙을 불러왔다.

한국에서도 자주 발생하던 콜레라는 1817년부터 1860년까지 인도에서만 1,500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만들어냈고, 이후에도 아시아 등 각 지역을 위협해 수천만명이 생명을 잃었다.

인간을 위협한 전염병은 이외에도 장티푸스, 천연두, 홍역, 결핵 등 종류가 다양했고, 그때마다 인간은 맥없이 목숨을 내놓고, 질병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나약한 신세가 되곤 했다.

‘돼지독감’ ‘스완 플루’ ‘H1N1’. 요즘 세상이 온통 ‘신종 플루’ 얘기로 가득 찼다. 의료보험 개혁, 아프간 사태, 이란 핵문제 등 얼마 전까지 지면을 장식했던 뉴스들이 신종 플루에 묻혀 버렸다.

자고 일어나면, 밤새 몇 명이 사망했고, 백신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뉴스를 접하는 것이 이젠 하루 일과처럼 됐다. 또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면 어김없이 신종 플루는 한 번은 다뤄지는 주제가 됐다.

신종 플루는 사회와 경제에도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자녀를 가진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예방접종을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며, 아이가 조금만 기침을 하거나, 열이 올라도 학교에 보내지 않을 정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잘 가지 않으려고 한다.

반면 오렌지 주스를 만드는 업체들은 플루에 좋다는 비타민 C를 보충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매출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며 내심 불경기 속 호재에 ‘기대’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처음에는 손을 깨끗이 씻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예방효과가 있다고 했는데, 지금 보면 그것만으로도 충분치 않은 것 같다. 자신은 청결을 유지해도 결국 감염된 사람과의 접촉에서 전염되는 것까지 차단하기에는 자가 예방법에 한계가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한 쪽에 모든 것이 치우치면 객관적인 사고와 판단이 흐려질 수 있다. 그리고 과장될 수도 있다. 이곳저곳에서 신종 플루를 떠들다보니 지금은 플루가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인지, 아니면 합병증의 조연인지 조차 분간하기 힘들 정도다. 또 일반 독감에 비해 치사율이 낮다는 의학 전문가들의 조언을 믿어야 하는 것인지도 헷갈린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플루가 대단한 위세를 떨치고 있다는 것과, 위협적이란 사실이다. 그리고 ‘대유행’이란 점이다.

얼마 전 한인타운 내 일부 병원에서 평소 잘 알고 지내는 환자들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해 예방백신을 접종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정부 당국이 모자라는 백신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고위험군 대상자들에게 우선 백신을 접종하기로 결정하는 등 다각도의 퇴치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에서 한인사회 일각의 이런 모습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혹 다른 인종이나 커뮤니티가 이를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려보면 얼굴이 화끈 거린다. 이럴때 일수록 차분해져야 한다. 그리고 힘을 모아야 한다.

신종 플루가 대유행이지만, 과거의 전염병 만연과는 상황이 다르고, 한국처럼 혼란스럽지도 않다. 첨단의학의 발달로 백신은 물론 치료제가 준비돼 있고, 사람들의 예방의식과 대처능력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오히려 팬데믹보다 무서운 것이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가 아닌가 싶다.

황성락 / 특집 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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