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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자 폴란스키

입력일자: 2009-10-02 (금)  
지난 32년간 도망자로서 미 법원에 의해 지명수배를 받아온 오스카상(‘피아니스트’) 수상자인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76)가 지난달 26일 취리히에서 스위스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그는 지금 스위스 영창에 갇혀 있다.

폴란스키가 도망자가 된 까닭은 지난 1977년 그가 할리웃에서 활동할 때 저지른 섹스범죄 때문이다. 그는 그 해 3월 LA 멀홀랜드 드라이브에 있는 잭 니콜슨의 집에서 모델 지망생인 13세난 새만사 가이머에게 술과 약물을 먹인 뒤 성추행을 한 혐의로 LA카운티 검찰에 의해 기소 됐었다. 그리고 폴란스키는 1978년 선고공판 전 날에 LA 공항을 빠져 나가 프랑스로 도주, 지금까지 파리에서 살고 있다.

그의 부인은 배우 에마뉘엘 세녜(잠수기와 나비)로 둘 사이에는 두 아이가 있다. 나는 지난 2007년 토론토 영화제 때 세녜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나는 그에게 “폴란스키는 할리웃에 돌아와 일하고파 하느냐”고 물었는데 세녜는 이에 대해 “나로선 알 수가 없는 일”이라고 대답했었다.

폴란스키는 취리히 영화제에서 생애 업적상을 받으러 갔다가 미 법원의 요청으로 스위스 경찰에 의해 공항에서 붙잡혔는데 앞으로 범인인도협정에 의한 그의 미국에로의 추방문제를 놓고 열띤 법정공방전이 벌어질 것 같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왜 LA 검찰이 이제야 폴란스키를 체포했느냐 하는 점이다. 폴란스키는 그 동안 베를린, 비엔나 및 프라하 등 유럽 각국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영화와 오페라 연출을 해왔고 또 스위스 휴양 도시 그스타드에는 자기 별채도 있어 그는 매년 몇 달씩 여기서 살았다.

이에 대해 LA타임스는 최근 폴란스키의 변호사들이 LA 검찰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 화근이 됐다고 보도했다. 변호사들이 지난 7월 LA 항소법원에 제출한 폴란스키에 대한 소취하 청구서류에서 LA 검찰이 폴란스키를 체포할 진지한 의도도 없이 문제를 방치하고 있다고 힐난했는데 이것이 검찰의 비위를 뒤틀리게 했다는 것이다. 신문은 이어 LA 검찰은 지난 2007년 폴란스키가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를 비롯해 그동안 모두 8차례 그에 대한 체포를 시도했었다고 말했다.

한편 폴란스키가 체포되자 프랑스와 독일과 이탈리아 및 폴란스키가 성장한 폴란드 등지의 영화인들과 정치인들은 그를 석방하라는 성명들을 발표했다. 프랑스 외무부는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의 개입을 요청했고 레흐 바웬사 폴란드 전 대통령도 폴란스키에 대한 선처를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이와 함께 미국의 유명 영화인들인 데브라 윙거와 우디 알렌 그리고 마틴 스코르세지와 데이빗 린치 및 하비 와인스틴 등도 폴란스키 체포는 부당하다는 청원서에 서명을 했다. 이들은 폴란스키는 그동안 자기 잘못에 대해 충분히 대가를 치렀다면서 더구나 가이머가 이미 폴란스키의 잘못을 용서한 30년 전의 범죄를 이제 와서 처벌한다는 것은 지나친 행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과는 달리 폴란스키는 죄 값을 치러야 한다는 견해도 많다. 최근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중 70%가 폴란스키의 처벌에 찬성했다. 처벌론자들은 오스카상을 받은 유명 인사라고 해서 치외법권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귀재라고 불러도 될 폴란스키는 할리웃에서의 활동이 금지됨으로써 감독으로서의 경력이 큰 타격을 입은 게 사실이다. 그래서 폴란스키는 그동안 할리웃에로의 복귀를 위해 몇 차례 변호사를 통해 LA 검찰 측과 자신의 문제에 대해 협상을 했지만 별무효과였다.

폴란스키의 영화들은 공포와 집념과 인간 마음의 탈선 특히 성적 일탈을 자주 다루고 있다. 심리묘사에 뛰어난데 보는 사람의 마음을 매우 불편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데뷔작인 ‘물속의 칼’과 카트린 드뇌브 주연의 ‘혐오’ 그리고 자기가 주연한 ‘입주자’ 및 미아 패로가 나온 ‘로즈메리의 아기’ 등이 모두 그렇다.
폴란스키가 인간 심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장인이 된 데는 그의 소년시절의 악몽 같은 경험이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폴란스키의 부모는 그가 7세 때 나치수용소에 감금됐는데 어머니는 그곳에서 사망했다. 폴란스키는 폴란드의 크라코우 게토를 탈출, 나치를 피해 시골을 전전하며 가톨릭 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생존했다. 또 그는 할리웃에서 활동할 때인 지난 1969년 8월 히피 사이코 찰스 맨슨과 그의 일당에 의해 임신 8개월째인 배우 아내 샤론 테이트가 살해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폴란스키의 재능을 아까워하는 나로서는 그가 미국에 와 검찰 측과 협상을 해 가벼운 형을 산 뒤 다시 할리웃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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