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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언 스피릿

입력일자: 2009-09-02 (수)  
한국 프로골프계의 개척자인 한장상이 1981년 한국일보 미주본사 초청으로 LA에 왔었다. 그는 골프계의 황제로 불리는 잭 니콜러스와 팀을 이뤘을 때 겪은 경험담을 다음과 같이 털어 놓은 적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오픈에서 잭 니콜러스와 짝을 이루게 되었는데 당시 ‘코리아 오픈’과 ‘JAPAN 오픈’의 챔피언인 자신에게 경기 내내 한마디도 말을 건네지 않거니와 보는 척도 않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16번 홀에 이르자 니콜러스의 태도가 변했다. 해변 가의 파3홀(245야드) 였는 데 바람이 너무 강해 공을 띠우는 선수마다 그린 공격에 실패했다. 이때 한장상은 드라이버를 꺼내 티를 놓지 않고 티샷을 시도, 공이 낮게 뜨면서 그린 위에 사뿐히 내려앉게 했다. 그랬더니 니콜러스가 한장상에게 다가와 “굿 샷”이라면서 미소를 보이더라는 것이다.

한장상의 결론은 아시아에서 JAPAN 오픈 등 아무리 유명한 타이틀을 갖고 있어도 미국의 수퍼스타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당신이 골프 잘 쳐? 그럼 USPGA 토너먼트에 출전해 우승해 봐. 이런 시각으로 아시안 선수들을 내려다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USPGA에 참석하려면 미국에 살면서 연습해야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비행기 값과 숙박료를 스폰서가 없어 감당할 수가 없고, 그리고 훌륭한 코치를 가질 재정 뒷받침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장상 프로는 20년 후를 전혀 내다보지 못하고 내린 결론이다. 그가 지적한 한국프로들의 불가항력 핸디캡이 지금은 완전히 해결 되었다. 저마다 스폰서를 갖고 있고, 미국에서 거주하며, 최고의 골프교사에게 배우고 있다.

미국 프로골퍼의 등용문은 ‘US 아마추어 챔피언쉽’이다. 타이거 우즈, 잭 니콜러스도 모두 ‘US 아마추어 챔피언쉽’ 출신이다. 아마추어에게는 이 대회 우승이 하늘의 별따기이고 챔피언이 되면 메이저 대회인 ‘매스터스’에 출전하는 영광을 누린다. 여기서 엊그제 한국국적의 안병훈(18세)이 예상을 깨고 우승했다. 코리언의 우승은 뉴질랜드의 이진명에 이어 벌써 두 번째로 최연소 기록우승이다. 같은 날 LPGA 세이프웨이 클래식에서 루키 허미정도 챔피언이 되었다. 양용은에 이은 미국 골프계의 잇단 ‘코리언 쇼크’다. 그래서 지금 미국 골프계에서는 “코리언들은 왜 골프를 잘 치는가”가 연구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왜 잘 치는가. 최근 10년 사이 “나도 할 수 있다”는 “Yes, I Can”의 자신감이 스포츠계에서 한국인들에게 일어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골프에서는 ‘자신감’이 대단히 중요하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없이는 주눅이 들어 세계 골프의 중심무대인 미국에서 성공하기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양용은의 우승은 단순한 승리가 아니라 코리언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 ‘양용은 효과’를 새로이 만들어 냈다. 안병훈이 ‘양용은 효과’의 산물이다. 양용은의 승리를 보고 자신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박세리의 US오픈 우승이 ‘박세리 효과’를 파급시켜 미국의 LPGA를 코리언들이 휩쓸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양용은 효과’가 코리언 남자골퍼들 사이에 번지고 있다. 박세리와 양용은은 한국 프로골프계의 축을 바꾸어 놓았다.

미국 프로골프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코리언 선풍은 ‘코리언 스피릿’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코리언의 억척, 악착, 성실함, 열성, 끈질김, 겁 없는 무모한 태도 - 이런 것들이 모두 뭉쳐진 것이 ‘코리언 스피릿’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 ‘코리언 스피릿’의 바탕은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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