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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富)와 언어의 상관관계

입력일자: 2006-11-20 (월)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무엇일까. 한 정의에 따르면 언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소중히 간직해야 하는 게 풍부하고 좋은 언어라는 게 부연의 설명이다.
한 세계의 석학은 언어를 이런 식으로 정의했다. ‘언어는 그 언어가 자라난 문화적 전통 속에서 이룩된 세계상을 표현한다’-. 언어에는 ‘소울’(soul)이 담겨 있다는 얘기다.
언어는 때문에 한 인간의, 또 한 민족의 사고와 생활을 지배한다. 이런 의미에서 언어는 인격이고 문화를 창조하는 힘이고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관련해 한 가지 가설이 제시됐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그 사람의 부(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세계의 부가 영어 사용권, 범위를 좀 더 넓히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 게르만 언어 사용권에 편중된 현상과 관련된 착상이다.
국민 1인당 소득 상위 20개 국 대부분이 이 언어권에 속한다. 영어를 제1 언어로 사용하는 사람은 전 세계 인구의 5%다. 독일, 프랑스어 등 나머지 게르만 언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3% 정도. 이들 8%의 인구가 전 세계 부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부가 왜 이처럼 편중됐나. 그 중요 원인은 언어에 있는지 모른다. 리처드 란이란 경제전문가가 제시한 가설이다. 그는 게르만 언어들, 그중 영어에는 경제와 관련된 어휘가 특히 발달된 점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비유했다. “영어를 모르면서 자유, 법치 등 영미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개념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시장경제 체제를 뒷받침 하는 용어와 개념이 부재인 언어권에서 시장경제는 제대로 이해될 수도, 또 수용될 수도 없다.”
그 한 예로 아랍어권이 지적됐다. 코란에 나오지 않는 단어는 사용할 수 없다. 아랍권 전체에서 통용되는 규정이다. 기술은 그러나 날로 발달하면서. 새 용어, 새 개념이 양산된다.
아랍권에서 그 단어들을 수용하려면 일일이 당국의 특별허가를 받아야 한다. 엄청난 제약이 따를 수밖에. 말하자면 언어가 지닌 폐쇄성이 경제 발전을 막고 있다는 거다. 그가 내린 결론은 따라서 사용 언어가 사용자의 부의 정도 결정에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특징은 발명·창조성·지적 탐구, 이 세 가지로 대별된다. 이는 이성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왜 서구, 다시 말해 유대·그리스도 전통의 문화권에서 자본주의가 탄생하게 됐는지에 대해 로드니 스타크란 사회학자가 내놓은 설명이다.
현대화가 왜 유대· 그리스도 전통사회에서만 가능했나. 그 답을 그는 말씀(word), 즉 로고스의 해석에서 찾았다. 기독교는 이성의 종교라는 것이다. 그 이성에의 존중이 언어에 스며들면서 기독교 문명에서만 자본주의 발달과 함께 현대문명이 이룩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요인은 없을까. 있다고 본다. 유대·그리스도 전통 문화권, 다시 말해 게르만 언어권에 남달리 발달한 언어가 그 답이 아닐까 싶다. 감사의 언어다. 남을 배려하는 언어다.
극한지방에 사는 이누이트족은 눈(雪)과 관련된 어휘만 수십종에 이른다. 기독교 전통이 오랜 영어 등 게르만 언어 사용권에서 유독 자주 사용되고 보편화된 언어는 감사의 언어다.
감사의 정신이, 또 이웃을 배려하는 표현이 언어생활 곳곳에 배어 있다. 각종 관용어는 물론이다.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마음의 언어’에도 그 정신이 넘친다. 감사의 언어가 육화(肉化)돼 있다고 할까.
공교롭다면 공교롭다. 감사의 언어가 그 어느 언어군 보다도 많고 또 생활화 됐다. 그런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부가 집중됐으니. 역으로 이야기 하면 감사의 언어가 배제된 언어권에는 부가 쌓이지 않는다.
그 부는 단순히 물질적인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정신적, 영적인 부요를 포함해 말하는 것이다.
‘…잘 산다는 건 무엇일까’-. 여기서 새삼 던져지는 질문이다. 뭘까, 그것이. 정의가 어렵다. 향기가 나는 삶이 아닐까. 아픔에도, 고난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드리는 감사. 그 순수한 감사의 정신이, 그 감사의 언어가 삶의 일부가 된. 그래서 은은히 향기를 풍기는.
또 맞는 추수감사절이다. 감사의 계절에 스스로를 돌아본다. 얼마나 많은 감사의 언어를 얘기했을까. 부끄럽다. 많은 언어를 너무 마구 사용했다는 생각에서다. 그리고 ‘마음의 언어’에도 진정한 감사는 없었으므로.
또 한 해가 간다. 감사절이면, 그 뒤로 바로 이어지는 게 크리스마스니까. 한번 다짐을 한다. 감사의 언어가 생활화 된 세밑이, 또 새 해가 되어야겠다고. sechok@koreatimes.com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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