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나는 가족들과 함께 캘리포니아의 대표적인 국립공원인 ‘세코이아·킹스캐년 국립공원’에 다녀왔다. 공원 입구에 있던 직원은 활짝 웃으며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가 있는 곳입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우리 가족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국립공원을 만끽하고 돌아왔지만, 한편으로는 연방정부 셧다운 기간 국립공원 직원들이 겪었을 고통과 불안을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캘리포니아는 세코이아를 비롯해 요세미티, 데스밸리 등 미국을 상징하는 국립공원을 무려 9개나 보유하며 전국에서 가장 많은 국립공원이 있는 곳이다. 사상 최장기간으로 무려 43일동안 이어진 이번 연방정부 셧다운은 캘리포니아 경제에도 엄청난 후유증을 남겼다. 국립공원 직원들은 제대로 된 급여도 못 받았고, 일부는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로 버텨야 했다.
셧다운은 국립공원뿐 아니라 국가의 핵심 인프라까지 마비시켰다.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곳 중 하나가 바로 항공 교통 시스템이다.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LAX)을 비롯한 수많은 캘리포니아 공항들은 셧다운 기간 동안 연착과 지연을 겪어야 했다. 특히 핵심 인력인 항공 관제사(ATC)들의 고통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이들은 국민의 안전을 위해 필수 근무 인력으로 분류되어 셧다운 기간 내내 근무해야 했지만, 월급을 받지 못하는 고통 속에 놓여 있었다. 수십만 명에 달하는 연방 정부 필수 인력들은 급여 없이 공항 관제탑에서 공공 안전을 위해 일해야만 했다.
셧다운이 종료됐다고 문제가 해소된 것이 아니다. 셧다운 기간 동안 약 67만 명의 공무원이 휴직했고, 주당 약 150억달러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다. 또 사상 최장 기간의 셧다운으로 국내총생산(GDP) 경제성장률은 매주 연율 기준 0.1~0.2%포인트 낮아진 것으로 추정된다.
‘깜깜이’ 상황이 된 경제지표도 불확실성을 키웠다. 노동통계국(BLS) 등 주요 경제 통계기관의 지표 발표가 중단되거나 지연됐고, 월간 고용보고서, 소비자물가지수(CPI) 등 핵심 정보의 공백은 정책 당국과 투자자들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가로막아 시장 불안감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국민들이 체감하는 경기는 최악의 수준이다. 주거비용과 생활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이런 물가 상승은 단지 통계 속 숫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집을 렌트하거나 사는 사람, 장을 보는 가정, 외식이나 외출을 자주 하는 평범한 사람 모두가 직접 체감하고 있다. 생활 필수품, 식료품, 에너지, 주거비가 모두 오르면서 실질 구매력은 추락했고, “더는 견디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이번 사상 최장기 셧다운은 정치가 경제와 국민의 삶을 얼마나 쉽게 파괴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처참한 사례다. 정치적 극단주의와 분열의 정치는 국민의 안전과 생계, 그리고 국가 신뢰도를 볼모로 잡았다. 만약 정치권이 이념과 정파적 이해관계를 앞세워 타협과 협치를 외면한다면, 이번 43일 셧다운은 더 이상 ‘최장기 기록’이 아닐 수도 있다. 예산 협상이 해마다 교착 상태에 빠지는 구조가 고착된다면, 셧다운의 기간은 매년 기록을 경신할 것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과 경제에 전가될 것이다.
세코이아 국립공원의 직원이 건넨 밝은 미소 뒤에 감춰진 생계의 불안, LAX 관제사들이 급여 없이 일터로 향해야 했던 절망, 그리고 불확실성에 갇힌 미국 경제의 현주소는 우리에게 하나의 교훈을 던진다. 정쟁을 멈추지 않는 한 경제적 고통은 반복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념을 넘어선 실용적 협치만이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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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용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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