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사는 이야기/ 설립 30주년 맞은 뉴욕머시너리 이남구 대표
전기학 전공 전기기사등 각종 자격증 소유
1988년 뉴욕머시너리 창립 수리업체로 출발
이태리 유니언사로부터 세계최다 판매상
2001년 무료세탁장비학교 운영 인재양성에도 앞장
그는 한인사회 세탁장비 선두 주자다. 처음엔 미국인 경영 세탁 장비회사 기술자로 출발했다. 그 곳에서 3년 근무하며 미국 시스템을 익혔다. 그런 선진기술을 토대로 세탁 장비회사를 설립했다. 1987년 30년 전이다. 그동안 한 업종에서 흔들림 없이 일해 왔다. 꾸준하게 기술향상을 위해 새로운 기술에 도전하는 자세로 임했다.
항상 최고의 기술과 서비스로 고객에게 감동을 주었다. 업계에서 신뢰성을 쌓은 이유다. 세탁 업주들에게 재능기부에 나서고, 후배양성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는 설립 30주년을 맞은 뉴욕머시너리의 이남구 대표다.
■잃어버린 옷
그는 강원도 간성에서 태어났다. 2남1녀의 둘째. 교육자인 아버지의 잦은 전근으로 어린 시절은 홍천에서 보냈다. 집에선 비둘기를 키웠다. 옷은 남보다 잘 입고 다녔다. 동네친구들하곤 개울가에서 헤엄치며 놀기를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개울가서 옷을 잃어 버렸다. 시샘한 누군가가 옷을 가져가 버린 것. 빨개 벗고 집으로 와야 했다. 그 때의 창피함은 지금도 생생하다고.
초등학교는 서울에서 다녔다. 아버지의 전근으로 두 곳을 다녔다. 친구들 사귀기를 좋아했고 잘 어울렸지만 깊은 친구 사귈 수 없던 시절이었다. 중, 고교는 다시 강원도에서 다녔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계속하기 힘들었지만 학비를 벌면서 공부를 마쳤다.학창시절 장래희망은 의사. 하지만 의대 갈 형편이 아니었다. 대학에서 ‘전기학과’를 전공한 이유다.
■미국인 전기 엔지니어와의 인연
대학 졸업 후 미국회사가 건설 중인 중화학공장에 전기 엔지니어로 취직했다. 미국인 전기 엔지니어 조장과 인연을 맺은 곳이다. 조장 밑에서 3년 동안 일하며 미국의 최신 기계 설비를 다루는 방법을 배웠고, 신기술도 습득하게 됐다. 한국 교육으론 도저히 배울 수 없는 다양한 선진기술이었다. 조장은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귀중한 선물도 주고 갔다. ‘전기기술 실력이 뛰어나고 성실하게 일한다’는 내용의 추천서를 써 준 것.
그 추천서로 그는 미국인 건설 담배제조공장 전기주임으로 취직했다. 공장건설이 끝난 후에도 그 곳에서 미국 기계를 테스트하고 전기공사를 관리 감독하는 역할을 맡았다. 전기주임이었지만 권의의식을 버리고 현장에 직접 뛰어들었다.
우선, 한 라인으로 운영되는 건조과정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전기, 기계, 보일러부서 등을 한 부서로 통합한 ‘응급전담 수리팀’의 신설팀장을 맡았다. 전기, 기계, 배관 등의 기초기술 교류 시스템도 마련했다. 개인적으로는 현장에서 다양한 분야의 기술을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었다. 전기기사 이외에 전기안전기사, 열관리기사, 위험물 취급기사, 대기환경기사, 산업안전기사 등의 자격증을 취득하게 된 이유다.
그는 담배건조공장에서 11년 정도 일했다. 퇴직하기 4년여 전부터는 1년에 2개월 정도 필리핀에 전기기사로 파견근무를 했다. 현지 직원들에게 전기수리 기술을 제공하는 등의 교육을 담당한 것. 그러다가 1986년 미국 이민 길에 올랐다.
그는 “담배건조과정이 세탁물 건조과정 원리와 거의 비슷해 나중에 세탁관련 기술 습득에 큰 도움이 됐다.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장경험이 미국에 와서도 세탁장비 업체를 운영하는 데 밑바탕이 됐다”고 말한다.
■계승에 힘쓰는 업계 최고로
그가 새로운 도전을 위해 이민 왔다. 한국에서 전기기사를 비롯한 각종 자격증을 소유했고 미국 회사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인 경영 세탁장비회사에 취직했다. 장비수리기술자였지만 텃세가 심했다. 초창기엔 굴뚝청소 등 허드렛일만 시켰다. 당시 분진으로 검어진 얼굴은 집에 와서 샤워를 3번이나 해야 씻길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도 못 고치는 보일러를 수리하면서 기술을 인정받게 됐다. 그 덕분에 한인 최초로 보일러와 드라이클리너 수리 전문기술을 배우게 됐다. 기본기술을 갖춰 수료기간을 단축시켰다. 한국과 미국기술 접목으로 전문기술 수준도 향상됐다. 그 후 한인세탁소에 기계수리 출장을 다녔다. 한인세탁소가 우후죽순으로 생겼지만 한인기술자는 드물어 무척 바빴던 시절이었다.
한인세탁소에 출장가면 퇴근 이후에도 기계 수리를 해달라고 했다. 기계 고장 탓에 장사가 힘들다는 요청을 거절할 수 없어 인정으로 고쳐줬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너무 잦아 회사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한인들에겐 좋은 일이지만 회사를 속인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는 러시아계 유대인 보스에게 상황을 솔직하게 얘기했다. 보스는 화내기는커녕 오히려 말해줘서 고맙다며 미국은 기회의 나라인 만큼 흔쾌히 ‘독립’하라고 격려를 해줬다. 그대신 좋은 인연을 이어가자는 것이 조건. 그가 1988년 뉴욕머시너리를 설립하게 된 이유다.
뉴욕머시너리는 수리업체로 출발했다. 그는 장비수리기술자로 많은 종류의 기계를 고치며 산 경험을 쌓았다. 이전 보스와의 인연 덕분에 세탁장비판매도 시작했다. 1995년에는 이탈리아의 세탁장비 업체 유니온과 합작해 빅토리 퍼크기계를 주문제작방식으로 생산해 기술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 후 세계 최초 미생물 배합비누(EM) 미국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경제적이고 에너지 절약, 환경 친화, 편리성 등을 갖춘 기계 개발로 인한 판매확대로 미국은 물론 일본, 한국, 중국, 유럽 등에 꾸준한 판매 성장을 보이고 있다.
현재는 스페인 UNISEC 기계를 중국조립 공장으로부터 수입, 미생물 비누 미국 특허를 취득하여 일본에서 수입 14년째 미국과 세계 각지에 판매하며 공신력 있는 보일러공인 딜러십도 갖고 있다.
그에겐 이태리 Union사로부터 세계최다 판매상을 수상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다. 작은 실수로 수백만 달러의 소송을 당한 경험이 아픈 기억은 오히려 모든 일을 규정에 맞게 한다는 교훈으로 삼고 있다.
세탁장비 업체 선택은 전문적인 조직과 노하우, 경험이 풍부하고 보험가입 등을 갖춘 업체여야 지속적인 서비스가 가능하고 나중에 발생한 문제처리가 수월하다고 추천한다. 그는 작업의 매뉴얼화로 작업에 혼동과 실수를 줄이며 각자의 일을 전문화하여 철저한 조직 관리와 각 개인에게 맞는 회사나 개인에 비전을 제시하여 동기부여를 심어주는 것이 자신의 비즈니스 노하우라 귀띔한다.
세탁인과 30년 함께 하고 있는 것을 보람으로 느끼는 그는 기술자출신으로서 기계에 대해 더 섬세하게 사용하기 쉽고, 고장률을 줄이며 경제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장점과 공장과 밀접한 관계임으로 기술 개발과 개선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자부심으로 꼽고 있다. 그는 “뉴욕머시너리는 있다가 안 되면 사라지는 업체가 아니라 계승에 힘쓰고 지속적으로 업계 최고로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업체의 계승과 지속성을 강조한다.
■재능기부의 삶
그는 2001년부터 무료 세탁장비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올해가 제9기. 그동안 8기에 걸쳐 3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냉동기를 다룰 수 있는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도 100여 명이 넘는다. 그 중 현직에서 냉동업과 장비업은 운영하는 한인들도 있다. 학교 수료 후에는 전문지식을 습득하여 본인이 장비를 관리수리하게 됨으로써 비즈니스에 큰 도움을 주고 있든 것이다.
올해 4월 시작하는 9기는 뉴저지 본사에서만 시행하던 것을 뉴욕에 가서 하게 된다. 거리 관계로 참여가 쉽지 않았던 뉴욕의 한인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교육내용은 세탁 업주들에게 세탁 장비 수리와 유리 기초지식 제공은 물론 각종 안전규칙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환경법이 강화되는 현실을 감안해 장비와 케미컬 지식과 교육에 중점을 둔다는 계획이다. 더불어 날로 어려워지는 비즈니스 여건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롭게 향상되고 있는 비즈니스 방식에 관한 소개도 있을 예정이다.
자신이 갖고 있는 30여 년간의 경험과 기술 지식을 나누며 재능기부의 삶을 살고 있는 그는 ‘항상 배우는 자세가 중요하다’며 많은 한인들이 세탁장비 학교에 올 것을 권유한다.
■기계고치는 의사
그의 삶의 좌우명은 항상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며 모든 것에 힘쓰며 주위를 사랑하면서 사는 것으로 자녀들에게도 그런 삶을 가르침으로 삼고 있다. 건강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이 행복이라 여기는 그는 자신이 가진 것을 남에게 어떤 방식으로나 베푸는 것도 또 다른 행복이라 생각한다.
그의 취미는 스쿠버 다이빙. 1년에 절반 정도 다니는 비즈니스 출장에서도 꼭 하루나 이틀 정도는 스쿠버 다이빙을 즐긴다. 꾸준한 운동으로 건강을 지키는 것도 기초 체력이 없이는 스쿠버 다이빙을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어린 시절 희망이었던 의사가 되지는 못했지만 현재 기계고치는 의사로의 삶에 만족해한다. 앞으로는 자신이 사업이 다음세대로 넘겨져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것이며 자신의 능력 안에서 세탁업계에 도움이 되고 후배를 양성하는 것으로 계획을 삼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건강을 지키며 최선을 다해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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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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