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보험가정에서 자라면서 암으로 엄마 잃을 뻔한 이민 1.5세
▶ 의료비 무서워 병키운 엄마의 고생 뼈아파
유리천장을 깨고 당당히 CEO가 된 에이미 신
건강은 가장 소중한 가치***가정행복의 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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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나케 병원 찾았지만…
한국에서 태어난 나는 9살에 미국으로 이민왔다. 3딸 중 장녀인 나는 어린시절 동생들과 함께 LA 봉제공장에서 일하고 돌아오는 엄마를 버스정류장으로 마중나가는 일이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하루종일 작업으로 피곤했을텐데 집에 오자마자 우리를 위해 저녁을 지으셨다. 학교청소부로 일했던 아버지와 우리는 고생스러웠지만 단란했고 화목했다.
이렇게 두분이 열심히 일한 결과 오렌지카운티에 작은 리쿼스토어를 갖게 됐다. 그러나 내가 UC버클리와 USC 약대를 졸업하고 UC어바인 메디칼센터에서 수련과정을 할 때 엄마의 떨리는 전화를 받고부터 모든 것이 깨어졌다.
의료비가 무서워 1년간 계속된 하혈을 참고 참았는데 이제는 병원에 가봐야겠다는 연락이었다. 부리나케 엄마와 병원을 찾았지만 의사는 어떻게 이지경까지 버텼냐며, 너무 늦게 병원을 찾았다며 자궁암이라고 진단했다. 보험이 없어 검사할 엄두도 내지 못한 엄마의 고통에 뼈아픈 눈물이 쏟아졌다.
그 뒤로 엄마에게 긴 치료가 이어졌다. 방사선 치료를 받은 이후 차사고를 당해 하체 마비로 누워 지낸 시간도 있었다. 이제 간신히 워커에 의지해 다니실 정도가 됐지만 이번에는 비호지킨 림프종(non-hodgkin’s lymphoma, 혈액암의 일종)이 엄마를 찾아왔다. 지금까지 엄마가 살아계신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헬스기관 두루 거치며 경력 쌓아
약사, 약국 디렉터로 승승장구했던 나는 엄마의 지난한 투병생활을 보면서 저소득층 의료혜택 정책수립자에 마음이 쏠려 인생 목표를 바꿨다. 물론 외향적이고 활동적이고 주체적인 내 성격도 이 일과 더 맞는 듯했다.
이후 알라메다카운티 메디칼 보험사인 알라메다 얼라이언스 포 헬스(Alameda Alliance for Health) 시니어 디렉터(1997-2000년), PCN(Pharmaceutical Care Network) 수석 부사장(2000-2003년), SF시니어건강센터 온락 최고행정담당자(CAO, 2003-2011년), 오클랜드 헬스매니지먼트 어소시에이츠 대표(2012-2013) 등을 거치며 헬스 프로그램 정책입안과 헬스케어 기관 운영의 경험을 쌓았다.
그외도 아시안아메리칸 리커버리 서비스, 이스트베이한인봉사회(KCCEB), UC버클리 동문회, 커뮤니티 헬스 리더십 카운슬 등 10여개 기관의 보드멤버로 자원봉사하며 사회적 교류를 넓혀왔다. 특히 온락과 KCCEB에서 일하면서 한인커뮤니티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 기관의 이사로 참여해 갖가지 아이디어를 내며 사람들의 관심을 촉발하고 사업을 확대하는 것이 즐거웠다.
2016년 6월 HPSJ 모데스토 오피스의 커뮤니티 룸 개관행사에 참석한 에이미 신(가운데).
■오클랜드서 스탁턴까지 출근
현재 나는 샌호아퀸과 스태니슬라우스카운티를 커버하는 메디칼 보험사 중 하나인 헬스플랜 오브 샌호아퀸(Health Plan of San Joaquin, HPSJ) CEO로 일하고 있다. 무보험자들의 의료접근성을 높이는 전략 수립, 효율적 운영, 재정자원 할당 및 관리, 인적자본 향상 등을 총괄하고 있다.
2012년 전임 CEO 은퇴로 공석이 된 자리에 공개응모한 나는 수개월간 이사회 멤버 및 HPSJ의 임원진과의 인터뷰 등 심사 과정을 거쳐 2013년 5월 최종 CEO로 발탁됐다. CEO가 된 2년 반만에 18만2,000명에서 35만명(2016년 11월 기준)으로 보험가입자를 늘려 전례없는 성장을 기록했고, 취임 9개월내 자금유치로 재정 안정화를 이뤘다. 또 모바일 앱, 텔레/비디오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등 의료서비스를 향상시켰다.
나는 오클랜드 집에서 HPSJ 스탁턴 사무실까지 편도 67마일을 운전해서 출근한다. 정체구간과 반대편 운행이라 혼잡하지 않다. 나는 오클랜드/버클리 지역의 활기를 좋아하며 친구들도 모두 이 지역에 살고 있어 오클랜드에 거주하고 있다.
■건강불감증 인식에서 벗어나야
트럼프 후보가 당선된 후 오바마케어 폐지론이 거론되면서 요즘 부쩍 바빠졌다. 공화당은 폐지, 수정 등 4개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연일 연방하원의원, 주상원의원 등과 미팅을 가지며 의견을 나누고 있다. 개인적으로 전국민의 의료보험화를 찬성한다. 전통적으로 무보험률이 높은 한인커뮤니티는 건강불감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녀들은 보험에 가입해주면서 정작 자신의 보험 가입을 미루는 한인 부모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자동차보험은 소유하면서 의료보험 갖기를 주저하는 것은 건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건강은 가장 소중한 가치이며 가정행복의 기반이다. 건강을 지키는 것이 가족을 지키는 것이다.
■유리천장 깨는 성공
나는 내 일에는 진취적이고 추진력도 강하고 에너지가 넘치나 개인적인 삶은 보수적이며 어른을 공경하고 조용한 편이다. 미국문화와 한국문화 정서를 동시에 갖고 있는 1.5세로 두 문화를 편안히 받아들인다. 영어사용에 제한적인 부모님 덕에 한국말도 능숙하다. 물론 CEO로서 내 나이(52세)가 너무 어리다는 불만과 여자를 배척하는(misogyny) 편견에 직면하기도 한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갑자기 힐러리에게 왜 그렇게 완벽함을 요구했는지 모르겠다. 남성인 트럼프에게는 관대하면서 힐러리에게는 작은 흠집도 몰아세웠다. 민주주의의 기본정신이 살아있는 미국에서도 유리천장은 쉽게 깨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일말의 사회적 책임감을 갖고 있다. 견고한 남성 중심의 조직문화와 보이지 않은 장벽을 바꾸는 여성 리더로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내재해 있다.
새해에도 많은 변화들과 마주하겠지만 그 변화에 좇아가기보다는 그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이 되려 한다. 또 주말마다 오클랜드 레이크메릿을 다 도는 걷기운동도 꾸준히 하고 16년째 이어온 북클럽 모임도 빠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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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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