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리칸 아메리칸 박물관 National Museum of African American History and Culture
▶ 흑인?...미국인!
박물관 전경. 이 건물은 아프리카 부족 국가의 왕관 모습에서 따 왔다(아래 왼쪽). 그리고 건물이 이 문양의 조각으로 되어 있는데 조화와 번영을 뜻한다고 한다.
-메트로에서 떠오른 생각
9월 24일 역사적인 아프리카계의 미국인(African American) 스미소니언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다행히 황휘섭 사진작가가 오랜 동안 컴퓨터와 씨름 끝에 27일 입장권을 얻어냈다.
12시 정문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번에는 주차에 애를 먹지 않으려고 집 동네에서 유홍렬 후배와 같이 지하철을 타고 가기로 했다. 지하철에 올라타니 출근시간이 아니라서 그런지 승객들의 모습이 모두 쫓기는 기분이 아니라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리고 인종 전시장이라고나 할까. 흑인, 백인, 아랍 계통 사람, 아시아인 등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한 공간에 섞여 있었다. 문득 이들을 쳐다보다가 이 여러 인종들 중에서 한국 동포들이 앞으로 잘 살아가기 위해서 롤 모델이라고 할까, 아니면 교과서라고 할까, 아무튼 어느 인종을 따라가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흑인과 한인들
나는 이미 한국 동포 100명중 99명이 어떤 답을 할 것인지 알고 있다. ‘유태인이다’이라고 대답을 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흑인(african American)’이라고 이야기 했다면 어떤 분들은 그런 말을 한 사람을 정신이 돈 사람이라고 이야기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물론 동포들이 유학이 아니라 먹고 살려고 몰려오던 1970-80 년대에 소위 할렘가라고 할 빈민 흑인 동네에서 구멍가게, 리커 스토어, 가발 가게, 잡화 가게, 델리 가게 등에 우리 교포들이 많이 진출하여 밑바닥의 삶을 사는 흑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했고, 그러면서 험한 세상을 많이 구경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시각으로 보아 왔고, 그런 마음으로 그들을 대하여 왔기에 LA의 4.29 폭동으로 한인 밀집지역 가게들이 쑥대밭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노랭이와 흑인
지하철을 이용해서 박물관으로 같이 가던 후배 유홍렬이 나에게 한마디 한다.
“사실 우리는 상대를 좀 배려하는 모습이 부족합니다. 이 박물관의 이름이 흑인 박물관(Black people Museum)이 아니라 아프리카 계통의 미국인(African American Museum)이라고 대접하며 부르지요. 이것은 미국의 주류 사회가 그들을 대접하는 방법이 달라야 한다는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지요. 현재의 추세이다 이런 말이죠. 그리고 말입니다. 만일 미국 사회에서 우리를 아시아계의 미국인이 아니라 ‘노랭이’ 라고 부르면 우리는 좋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흑인, 심지어 일부는 ‘깜둥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지요. 4.29 같은 사건이 다시 나지 않도록 우리도 반성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좋은 지적인 것 같다. 그리고 여태껏 나도 흑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버릇이 된 것 같다. 최소한 공식적인 글에서는 아프리카 계통의 미국인이라고 써야겠다.
-소수민족에 혜택의 길 열어줘
생각을 해 보면 대통령이 흑인이며, 현재 유일하게 소수 민족으로 3명의 장관도 그리고 주한 미군 사령관도 흑인이다. 해사 출신의 여자 미쉘 하워드(Michelle Howard)는 해군 대장으로 해군 부 총참모장이기도 하다. 물론 연방 의원들부터 각 주의 입법, 행정부에 진출한 소수 민족으로 흑인만큼 많이 진출한 인종은 없다.
그리고 무어니 무어니 해도 사람 이름으로 법정 공휴일로 정해진 것은 콜럼버스와 마틴 루터 킹과 프레지덴트 데이(President day)로 2월에 태어난 링컨과 워싱턴 탄생을 묶어 2월 21일로 정한 사흘일 뿐이다. 이 셋 공휴일중에 하나를 흑인 목사가 차지하다니 눈부신 진출이 아닌가?
물론 금년에도 350억 불의 역대 최고의 군사원조도 받아내고, 전국 유태인 회의에 상, 하원 의원들이 눈도장 찍으려고 나타나고 금융, 언론계를 주무르는 유태인들에게서 우선적으로 많은 것을 배워야겠지만, 대학입학 전형에서부터 정부를 상대로 용역, 건설 등의 입찰에 이르기까지 소수민족의 각종 혜택의 길을 열어준 흑인들에게 감사와 그들의 미국 내에서 목소리를 키우고 여러 혜택을 얻어내는 그들의 행적 또한 배워야 할 것이란 생각이다.
자유, 이 단어의 모순을 토마스 제퍼슨이 많은 노예를 거느린 것을 알리며 비꼬고 있다. / 포르투갈, 영국, 스페인, 덴마크 등에서 노예장사(?)를 했는데 포르투갈이 제일 많이 데리고 왔다. / 노예 매매 시장. / 목화를 압축 포장한 것(Bale)과 방직기. 이것이 시대의 상징이다. / 1853년까지도 노예를 사고 팔았다 한다.(위부터 시계반대방향)
-아프리카 부족 왕관의 외관
스미소니언 정거장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려, 탄자니아에서 태어나서 이집트, 영국,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건축 설계사로 유명한 흑인 데이비드 에드자예(David Adjayfe)가 설계하고 오프라 윈프리가 2천만 불, 마이클 조던이 5백만불 등 여러 흑인 독지가들의 도움으로 지어진 바로 그 건물로 가고 있다. 건물의 겉모습은 아프리카 옛 부족 왕들의 왕관의 모습이란다. 웅장하다.
전시장에 들어가면서 옛날 백인의 눈에서 백인의 눈높이로 만들어진 박물관이 아닌 역사 인식을 제대로 반영한 전시장이기를 바라면서 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최초의 흑인 목사’ ‘최초의 미국 야구 메이저 선수’ ‘최초로 미군 육군 장교’ 이런 식의 설명과 사진이 즐비한 전시장이 아니고, 서아프리카에서 시작했지만 카리브 해안의 여러 섬들에서 사탕수수 재배를 위해서 끌려온 노예와 달리, 남부의 목화밭, 북부의 공업지대에서 시작된 그들의 생부터 미식축구 선수로 3년간 3000만 달러의 연봉을 받으면서도 시합 전에 국가를 부르는데 팔짱을 끼고 버티는 John Kaepernick 선수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마음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 그 무엇을 기대한다는 말이다.
-왜 미국은 아직 싸우나
전시장은 지하 1, 2, 3층이 400년간 노예에서 해방, 인권 회복까지 긴 역경을 주제로 하고, 지상 1, 2, 3층은 문화, 예술, 스포츠 등에서 미국을 빛낸 주인공들을 테마로 되어 있다. 나는 400년의 고통의 역사를 먼저 보기로 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노예들을 누가 언제부터 얼마나 아프리카 대륙에서 끌고 왔느냐 이었다. 포르투갈 1441년부터 모두 5백80만, 영국 1562년부터 3백30만, 프랑스 1549년부터 1백40만이었다. 그런데 라틴 계통의 나라들, 다시 말해서 중남미부터 남미 대륙 맨 아래쪽 브라질까지 그런대로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그들과 이제는 서로 섞여서 그런대로 평화스럽게 살아가는데 왜 이 미국에서 아직까지 격렬하게 싸우고 매일 경찰이 비무장을 한 흑인을 총으로 쏘아 죽였다고 하고 매일 항의 데모를 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에 잠겼다.
혼자 생각은 아마도 스페인 계통의 사람들은 사탕수수 같은 소비재 생산에 관심과 돈을 버는데만 관심이 있는 반면에, 영국인들은 1차 산업혁명의 전부라 할 수 있는 것이 면방직이요, 그리고 소비 시장 확장으로 자본주의의 중심으로 뻗어 나가는데 가장 중요한 목화 생산에 근거지로 그들의 식민지 미국을 경영하느라고 혹독한 노예 관리를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거기다가 앵글로 색슨족의 냉혈함도 한 몫 한 것이 아닌가도 싶다.
1층의 식당
박물관이 개관한지 2일이 지났다. 정말 인산인해다. 맨 아래층 긴 줄이 있다. 무엇인가 했더니 노예선의 실물이 있단다. 아마도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노예선 보기를 포기하고 단지 노예선 사진, 족쇄, 꼭 개 목걸이 같은 것부터 노예를 사고팔고 하는 사진과, 목화 농장에서 생활상으로부터 남북 전쟁 시절의 그들의 역할, 노예 해방, 그리고 인권과 차별 대우를 벗어나려는 그들의 여러 모습들을 돌아다보았다.
너무 많은 기록과 사진으로 머리가 꽉 차버렸다. 동행한 유홍렬 씨가 워싱턴 포스트에서 추천한 것이라며 꼭 보라고 추천한 것도 대충 본 것 같다. 1층에 그들의 음식들을 소개하는 식당이 있다. 나야 루이지애나 주에 크리올 식단에 검보 같은 것이 전부이지만 꽤나 메뉴가 많아 보인다. 그러나 이것도 포기해야 했다. 줄을 보니 한 시간을 기다려도 차례가 올 것 같지 않다.
미국의 역사라는 것은 어찌 보면 영국의 산업에 대항해서 미 북부의 신흥 공업세력이 남부 원료 시장을 놓고 싸움을 하다가 남북전쟁을 기점으로 북부의 승리로 미국이 공업의 나라로 또 자본주의 나라로 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무대에 흑인이 하나의 주역인지도 모르겠다. 스미소니언 인디안 박물관이 있는데 이것과 비교 할 때에 이 미국의 흑인 역사를 단지 몇 시간에 다 본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리고 무척 피곤했다. 나는 1, 2, 3층에 문화, 예술, 언론, 스포츠를 포함해서 그저 건성으로 본 것을 아쉬워하며 사람들이 몰려들지 않을 때에 한 번 더 오기로 하고 이곳을 떠났다.
주소 200 15th St NW, Washington, DC 20230
<
이영묵<전 워싱턴 문인회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